헛돈 쓴 도시재생… 환경개선 안되고 재개발 막히고

900억 들인 종로 창신동… 좁은 도로·낡은 시설 여전
주민들 “변화 체감 못해”… 재개발 배제돼 불만 가중

도시재생 사업지로 지정된 지역은 공공재개발 대상에서 제외돼 해당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도시재생 구역 전경.

[세계비즈=박정환 기자] “박물관 짓고 벽화 그리는 게 도시재생인가요?”

 

낙후된 서울 도심 주거지역을 개선하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보여주기 식 사업 탓에 실질적인 주거환경 개선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한번 도시재생 사업지로 지정된 곳은 공공재개발 대상에서 제외되고 구역 해제도 불가능해 해당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19일 건설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기존에 지정된 도시재생 구역을 해제하고, 대안으로 공공재개발을 확대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2015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당시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이었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주도한 주거환경 개선 프로젝트다.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정비 사업과 달리 철거나 이주 없이 기존 모습을 보존한 채 지역 활성화를 추진하는 게 특징이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전국의 낙후 지역 500곳에 5년간 총 50조원을 투자한 사업이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은 2014년 지정된 ‘전국 1호 도시재생사업지구’로 주거지역 환경 개선에 총 900여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정부와 서울시는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자평하고 있지만 사업지 지정 후 5년이 지난 현재 창신동 주민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대부분 “그 많은 예산을 어디에 썼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종로구 창신동 주택가 골목길.

18일 찾은 창신동 주택가는 여전히 마을버스 한 대 다닐 수 없을 만큼 길이 좁았고, 허름한 주거 시설들도 그대로였다. 일부 골목은 소방차 진입도 어려울 만큼 길이 협소해 화재에 취약해 보였다. 골목길 계단과 경사로는 눈이라도 오는 날엔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팔랐다.

 

창신동에 20년 째 거주 중인 A씨는 “도시재생을 했다는데 솔직히 체감되는 변화는 전혀 없다”며 “그나마 바뀐 것은 5년 전 들어선 백남준 기념관과 카페 몇 개, 산꼭대기 놀이터가 전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지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B씨는 “도시재생 사업이 공식화되기 몇 개월 전부터 이미 창신동 주택 매물을 몇 개씩 사들이는 외지인이 늘면서 집값이 1년새 1억원 넘게 뛰었다”며 “정작 창신동 원주민들은 사업 관련 정보를 몰라 집을 팔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주민들은 어두운 골목길을 밝게 해주고 좁은 길은 트럭이나 버스가 다닐 수 있도록 넓히는 그런 실질적인 주거환경 개선을 원하는데, 정작 예산의 대부분이 지원센터나 박물관 같은 이른바 ‘앵커시설’을 만드는 데 들어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창신동 주택가.

이에 도시재생 사업지 주민들 상당수가 공공재개발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현재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기존에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던 지역은 공공재개발 사업지 선정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말 일부 도시재생 지역 주민들이 정부의 공공재개발 사업 후보지 공모에 신청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도시재생이라는 ‘덫’에 걸려 이도저도 못하게 된 일부 지역은 집단행동에 나섰다. 현재 창신동 공공재개발추진위원회는 서울시에 행정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이은형 책임연구원은 “도시재생 사업지에서 재개발을 허용하면 그동안 쏟아부은 예산이 순식간에 매몰비용으로 바뀌고 정부 스스로 ‘도시재생은 실패한 정책’임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공공재개발 불가를 못박은 것”이라며 “도시재생 사업을 재개발로 선회하는 것은 빨라도 다음 정권에서나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오는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정치권도 도시재생 사업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있다. 최근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창신동 도시재생 구역을 찾아 “혈세가 어떻게 낭비되고 있는지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도 서울 용산구 서계동 도시재생사업 현장에서 “도시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예산이 너무 낭비되고 있다”며 규제 완화와 재건축 및 재개발 사업 촉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정부가 설 이전 내놓을 25번째 부동산 대책엔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기존 정비사업과 도시재생 사업을 연계하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pjh12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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