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제의 그늘… 청약통장 무용론 확산

당첨 커트라인 60대 후반… 만점자 탈락 사례도
공급 없는 민간택지 분상제… ‘묻지마 청약’ 초래

청약 당첨 커트라인이 60점대 후반까지 치솟으면서 청약통장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예비 청약자가 몰려든 아파트 견본주택. 세계일보DB

[세계비즈=박정환 기자] ‘로또 분양’을 노리는 청약 경쟁이 과열되면서 가점 인플레가 극심해지고 있다. 수도권 인기 단지의 경우 당첨 커트라인이 60점 후반대까지 치솟아 청약통장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가점이 낮을 수밖에 없는 30~40대 실수요자들의 박탈감도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최근 몇 년새 집값이 급등하면서 시세 대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내 집 장만을 할 수 있는 청약 시장에 수요가 몰렸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 주택청약 종합저축 가입자 수는 2555만9156명으로, 2019년 말(2375만6101명) 대비 180만3055명 증가했다.

 

하지만 이 중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청약통장은 극히 일부다. 21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새해 첫 수도권 로또분양 아파트로 시장의 주목을 받은 성남 ‘판교밸리자이 1·2·3단지’의 청약 당첨자 최고 가점은 만점(84점)에서 단 5점 모자란 79점이었다. 그 밖에 다른 주택형도 당첨 평균 가점이 60점 중후반에서 70점대에 달했다. 1단지 전용 84㎡의 경우 커트라인이 73점으로 4인 가구 만점(69점)이 탈락하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분양한 ‘힐스테이트 리슈빌 강일’에선 청약통장 만점이 나왔다. 만점은 무주택 기간 15년 이상(32점), 부양가족 6명 이상(35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 15년 이상(17점)을 충족해야 한다.

 

정부는 시세보다 저렴하게 집을 제공하면 집값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는 논리로 작년 7월부터 민간택지에서도 분양가상한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공급이 받쳐주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된 분양가상한제는 거주지와 상관없이 시세차익만 노리는 ‘묻지마 청약’이라는 병폐를 낳았다. 여기에 신축 브랜드 아파트 선호 현상이 더해지면서 청약 경쟁률과 당점 커트라인이 끝없이 치솟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작년 서울 아파트 1순위 경쟁률은 76.9대 1로 전년 32.1대 1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 현재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에 당첨되려면 최소 60점 이상의 가점이 필요하며, 안정권에 들기 위해선 70점은 넘겨야 한다. 30대 부부라면 이론상 아이가 다섯은 있어야 가능한 점수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청약 당첨이 어려워지자 가점을 높이기 위한 온갖 불법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위장결혼이다.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사례에 따르면 동거남 및 자녀 2명과 살고 있었던 한 40대 여성 A씨는 자녀를 3명 둔 30대 남성 B씨와 혼인신고를 한 뒤 가점제로 청약을 신청했다. 부양가족이 6명이나 돼 높은 가점을 받아 당첨됐고 이후 이혼했는데, 이를 수상하게 여긴 관계 당국으로부터 위반 사실이 적발됐다.

 

이밖에 분양 시행사가 일부 지원자들과 짜고 허위 서류를 제출해 불법 당첨된 사례도 있었다. 현행법상 부정청약이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부정청약으로 얻은 이익이 1000만원이 넘으면 최대 3배까지 벌금을 문다. 분양이 취소되는 것은 물론 향후 10년간 청약 신청 자격도 박탈된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주택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분양가상한제를 밀어붙이다 청약 시장 과열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며 “과도한 특별공급 비중을 줄여 일반 1순위자에 청약 기회를 안배하는 응급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pjh12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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