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성냥갑’ 그만…아파트 디자인 경쟁 심화

외관 디자인 10년 넘게 제자리걸음… 건설사 “비용·규제가 원인”
싱가포르 ‘더 인터레이스’ 주목… DL이앤씨 ‘트위스트 설계’ 개발

서울 아파트 단지 전경   뉴시스

[세계비즈=박정환 기자] 건설사들이 주택사업에 막대한 돈을 들여 시공 기술력을 향상시킨 덕분에 ‘K-아파트’는 질과 효율성 측면에서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외관 디자인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따져 보면 제값을 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적잖다.

 

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아파트는 건설사 브랜드별로 디자인이나 색상에서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외관이 마치 콘크리트로 만든 거대한 ‘성냥갑’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최근 분양되는 아파트들의 경우 실내 특화설계나 첨단 IoT(사물인터넷) 시스템,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 등을 선보이고 있지만 외관 디자인만큼은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인 상황이다. 비슷한 형태로 우후죽순 들어선 아파트들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는다.

 

건설사들은 정부 규제나 건축비 상승 등으로 인해 아파트 외관 디자인에 차별화를 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기술력이나 노하우가 부족해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이지 못하는 게 아니다”며 “문제는 비용인데, 재개발이나 재건축 사업에서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트위스트(나선형)’나 ‘틸트(베이 윈도우) 기법’ 등을 적용할 경우 건축비와 조합분담금이 오를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반발하는 조합원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도 발목을 잡는다. 특히 서울의 경우 일조망 확보를 위한 아파트 동간거리 제한, 셜계변경 제안 규제 등으로 특화설계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건설사들의 입장이다. 민간 아파트에도 적용 중인 분양가상한제도 건축비 상승을 억제해 특화 디자인 도입을 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조합 사업지의 경우 시공사 선정 전에 대략의 설계가 결정돼 있고 그 안에서 일부 특화설계를 제안하는 방식”이라며 “시공사 선정 시에도 중대한 설계변경을 제안하는 것은 규제하고 있는데, 중대한 설계 변경의 기준이 명확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한된 용적률 안에서 건폐율이나 동 배치간격 등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층고나 고도제한 규제를 일부 완화해주면 좀더 다양한 스카이라인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국내 현실과 대척점에 서 있는 곳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 퀸스타운의 위치한 ‘더 인터레이스’(The interlace)는 총 1040가구의 아파트 단지로 2015년 세계건축박람회에서 ‘올해의 건축물’ 우승작으로 뽑혔다.

 

독일 건축가 올레 스히렌은 블록을 쌓아올리는 ‘젠가’라는 보드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길이 70m, 6층 높이의 유닛 아파트 31개동을 엇갈리게 쌓아 탑 형태를 만들었다. 서로 다른 높이의 아파트 블록들이 120도로 만나도록 설계했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8개 마당을 중심으로 육각형을 이룬다. 옥상에는 녹지공간으로 꾸며진 공중정원을 조성했다.

주거용 트위스트 건축물 투시도.   DL이앤씨 제공

최근엔 국내 건설사들도 차별화된 외관 디자인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최근 DL이앤씨는 층마다 일정 각도로 회전하며 건물을 쌓아 올리는 방식의 나선형 형상을 갖추는 ‘주거용 트위스트 설계기술’을 개발해 특허 출원했다.

 

이전의 나선형 건축물과 달리 모든 층의 평면을 동일하게 구현 가능하고, 기존 아파트 건축 공법을 그대로 활용해 시공성과 경제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특화설계가 적용될 구체적인 사업지나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DL이앤씨 관계자는 “트위스트 설계 등 특화 디자인 적용으로 공사비가 상승할 수 있지만 랜드마크 효과, 자산가치 상승 등의 장점도 있어 조합에서도 이를 고려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SK건설의 ‘수원 SK 스카이뷰’는 큰 나무를 모티브로 일직선 형태를 벗어나 아파트 아랫 부분이 윗 부분보다 넓은 형태를 띠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싱가포르의 경우 동일 디자인 설계는 허가가 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도시국가라 가능했던 것”이라며 “매번 아파트단지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데다 분양가상한제로 인해 돈을 들여 고급스러운 외관 디자인을 짓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설계안을 제시하고 법규를 어떻게 유연하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pjh12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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