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 기준금리 인하 속도 조절을 시사하면서 한국은행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인하에 환율이 급등하는 등 국내 금융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연준은 1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4.50~4.75%에서 연 4.25~4.50%로 0.25%포인트 낮췄다. 지난 9월 빅컷(0.50%포인트 인하)으로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선 뒤 세 차례 연속 금리 하향 조정이다.
금리 인하 자체보다 크게 바뀐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향후 금리 수준 전망을 표시한 도표)가 핵심이다. 새 점도표에 따르면 연준 위원들은 내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로 3.9%를 제시했다. 9월 전망치(3.4%)보다 0.5%포인트나 높아진 것으로 현재 금리 수준을 고려하면 내년에 금리 인하를 당초 예상한 4번이 아닌 2번 정도만 내리겠다는 뜻이다. 2026년 말 기준금리 예상 수준도 2.9%에서 3.4%로 뛰었다.
미국 경기와 고용 흐름이 탄탄하고 물가 재상승 가능성도 있는 만큼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금리 추가조정 속도를 늦추는 게 적절한 시점에 도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밝혔다.
한은 뉴욕사무소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연준 위원들의 결정, 물가 전망 리스크 또한 매파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더욱이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연준의 금리 인하 사이클 종료에 대한 문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향후 노동시장이 계속 견고하다면 추가 인하에 대한 정당성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바라봤다.
연준의 메시지로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사태로 시작된 탄핵 정국과 연준의 금리 속도 조절 소식에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원·달러 환율은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던 지난 3일 밤 1442.0원까지 급등했다가 이후 둔화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계엄 사태 전보다는 높은 수준인 1430원 선을 오르내렸다. 그러다 이날 연준의 속도 조절 가능성에 원·달러 환율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날보다 16.4원 오른 1451.9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달러 초강세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연준이 향후 금리 인하 속도 조절을 시사하면서 한은의 상황도 복잡해졌다. 미국의 금리가 시장의 기대만큼 빠르게 내려가지 않으면 중장기적으로 달러 가치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원·달러 환율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 한은이 기준금리까지 빠르게 낮추면 원화 가치 하락과 함께 환율이 더 뛸 가능성이 커진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 결정에 환율을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현 상황이 이어진다면 내년 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할 요인이 된다. 하지만 수출 증가세 둔화, 미미한 내수 회복에 탄핵 정국까지 겹치면서 경기가 빠르게 식고 있다. 연속 금리 인하로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해 국내 금융·외환시장 영향을 점검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글로벌 금융시장은 금리 인하에도 이번 회의 결과를 긴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미국 국채금리와 달러 가치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면서 “세계 주요 통화들이 대폭 약세를 보였고 우리 금융·외환시장도 단기적으로는 변동성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이어 최 부총리는 “정부와 한은은 높은 경계의식을 가지고 24시간 금융·외환시장 점검 체계를 지속 가동하면서 변동성이 과도하게 나타나는 경우에는 추가적인 시장안정조치를 과감하고 신속하게 시행하겠다”면서 “외환시장 안정과 외화 유동성 확보 등을 위해 외화수급 개선방안, 연장 시간대 외환거래 활성화 방안, 세계국채지수(WGBI) 관련 거래 인프라 개선방안 등을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 담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한은은 외환스와프 거래를 올해 말까지 연장하되 한도를 기존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증액하는 것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외환시장 불안정 시 국민연금의 현물환 매입 수요를 흡수할 수 있어 외환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정서 기자 adien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