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제31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회의는 20년 만에 대한민국이 의장국을 맡아 세계 최대 경제협력체인 APEC의 미래 방향을 모색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이번 개최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7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통상·무역 협상, 디지털 혁신과 인공지능(AI), 공급망 복원력, 기후변화 대응 등 신흥 경제 환경에 발맞춘 핵심 의제들이 심도 있게 논의됐으며, 한미 정상회담과 미중 정상회담 등 주요 국가 간 협력의 현장이기도 했다.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회원국들은 경주 선언을 공식 채택하며,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과 포용적 번영을 위한 공동의 비전을 선언했다. 이를 통해 기업과 정부가 함께 대응해야 할 전략적 과제를 도출해 글로벌 경제 질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AI 강국 코리아’ 도약 기반 마련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처음으로 AI 공동선언 ‘AI 이니셔티브’와 ‘인구구조 변화 대응 프레임워크’를 채택했다. 문화창조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APEC 정상 문서에 처음으로 명문화했다.
특히 엔비디아로부터 최대 14조원에 달하는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개를 확보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90억 달러(13조원) 투자를 유치하는 경제외교 성과도 이뤘다. 한국이 AI 인프라 구축을 통해 자동차·제조·반도체·통신 산업의 디지털 전환 가속을 통해 ‘AI 3대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기회를 잡았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지난달 30일 성사된 황 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등의 이른바 ‘치맥(치킨+맥주) 회동’이 전 세계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엔비디아와의 AI 협력 강화를 통해 한국의 AI 대전환이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실용외교 역량 발휘…미·중·일 가교 역할
이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등 연쇄 정상외교에서 실용외교 역량을 발휘해 한미 관세협상, 안보 패키지 등 현안에 선방하며 국제적 불확실성 속 국익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회담에서는 상호 호혜·안정적 관계 발전에 공감대를 형성해 대중 견제 참여 우려를 완화하며 관리형 관계의 틀을 마련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는 교류·협력을 지속하는 ‘셔틀 외교’ 유지에 합의해 협력 채널을 공고화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첨예한 미중 대립 속에서도 ‘경주 선언’ 타결과 3건 성과문서 합의를 이끌며 조정·중재 리더십을 입증했다. 자유무역 가치 훼손을 최소화하며 현실적 합의를 도출하고, AI·인구구조 등 공동 도전을 의제로 부상시켜 미·중·일을 모두 포섭하는 균형형 실용외교를 구현했다. 그 결과 한국이 글로벌 외교 플랫폼으로 부상했다. 다만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지속적 심화와 구체적 실질 성과 확보가 과제로 남아 있다.
◆한미 관세협상 극적 타결…‘핵추진 잠수함’도 현실로
트럼프 대통령 방한을 활용해 한국은 장기 교착이던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합의를 극적으로 타결했다. 3500억달러 투자 패키지 중 현금 2000억달러로 하되 연 200억달러 상한을 설정해 일본식 ‘백지수표’ 요구를 피했고, 나머지 1500억달러는 한국 주도 마스가(MASGA)에 배정했다. 투자 프로젝트의 상업적 합리성 명시와 한·일 기업 우선 참여권도 확보했다. 이에 따라 자동차·반도체 등 관세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일본 대비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냈다. 다만 2000억달러 현금 투자로 재정 부담 우려는 남아 향후 집행 과정의 정교한 관리가 요구된다.
핵추진 잠수함 도입과 우라늄 농축·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에 관한 논의에서도 돌파구를 마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면서 2030년대 중반 이후 5000t급 이상 잠수함 4척 이상 건조 계획이 가시화됐으며, 일본 수준의 포괄적 사전동의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AI·에너지 수요와 대중·대북 억제 관점에서 한국 역량 강화를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