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이종섭 호주로 내보내자”…수사외압 논란 속 직접 지시

尹 지시받은 조태용 “기왕이면 빨리 보내라”
출금심의위 결정서도 사전에 해제 결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9월 서울 서초구 순직해병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이명현)에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해병대 박정훈 대령의 항명 혐의 재판을 통해 국방부 수뇌부의 수사외압 정황이 알려져 야당을 중심으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수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던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이제 이종섭을 호주로 내보내자”고 지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의 공소장에는 당시 윤 전 대통령이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에게 내렸던 구체적인 도피 지시 발언이 담겼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장관을 연결고리로 자신까지 수사외압 의혹의 수사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호주로 내보내려 한 것으로 봤다.

 

윤 전 대통령이 가장 먼저 이 전 장관의 대사 임명을 언급한 것은 2023년 9월 12일로, 이 전 장관이 수사외압 의혹이 불거져 사의를 표명한 날이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조 전 실장에게 “야당이 탄핵을 하겠다고 해서 본인이 사표를 쓰고 나간 상황이 됐는데, 적절한 시기에 대사라든지 일할 기회를 더 줘야 하지 않겠나. 공관장을 어디로 보내면 좋을까?”라고 물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때 조 전 실장은 호주대사직을 추천했고 윤 전 대통령은 “적절한 시기에 기회를 주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통령은 사흘 뒤 대통령 관저에서 퇴임 장관들과 만찬을 하던 중 이 전 장관에게 “앞으로 대사 또는 특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전임 호주대사의 임기가 2년 이상 남아있었으며, 호주대사의 경우 정년 초과 근무가 가능한 만큼 인사 교체가 적절하지 않은 시기였으나 윤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호주대사 교체는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공소장에는 윤 전 대통령이 두 달 뒤 이 전 장관의 대사 임명을 재차 지시하며 이번엔 구체적으로 ‘내보내자’는 말을 쓴 것으로 적시됐다.

 

이 전 장관의 측근인 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이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에게 혐의자 축소 지침을 전달한 정황이 군사법원에서 공개돼 이 전 장관이 본격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던 시기였다.

 

윤 전 대통령은 이어 11월 19일 조 전 안보실장에게 “이제 이종섭을 호주로 내보내자”고 했다. 이에 조 전 실장은 조구래 전 외교부 기획조정실장에게 “이제 이종섭을 보내야겠다. 인사 프로세스를 준비하자. 기왕이면 빨리 보내라”며 지시를 하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시를 받은 조 전 기조실장은 외교부 인사 담당 실무자에게 전화해 “조태용 실장한테 전화가 왔는데 그 호주대사 이제 뺄 때가 됐다. 후임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다. 3월까지 가기에는 대통령한테 좀 얘기가 그렇다고 하더라”며 윤 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음을 언급했다.

 

이어 조 전 기조실장은 이 전 장관의 대사 임명을 신속히 하되 단독으로 하지 말고 눈에 띄지 않게 다른 공관장 몇 명과 함께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유사한 지시는 장호진 전 외교부 차관에게도 내려갔다. 조 전 안보실장은 12월 5일 장 전 차관에게 이듬해 1월까지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보내는 절차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장 전 차관은 외교부 인사 담당 실무자에게 “호주하고 모로코를 엮어서 빨리 진행하라. 이번 주 내라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실에 상신하라”, “1월 내에 부임할 수 있도록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외교부 직원들은 당시 호주 대사 임기가 남아있고 특별한 교체 사유가 없지만 윤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이므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공관장 자격심사를 진행했다고 특검팀은 봤다.

 

공관장 자격심사 운영세칙과 달리 이 전 장관의 외국어 능력 검정점수를 제출받지 않았고, 심사위원들 서명만 받는 식으로 졸속 심사만 거쳐 적격 결정을 내렸다.

 

윤 전 대통령 지시하에 이뤄진 전방위적 조력으로 이 전 장관은 호주 정부로부터 아그레망을 신속히 받을 수 있었고 지난해 3월 4일 호주대사로 임명됐다.

 

이 전 장관은 출국 과정에서도 대통령실, 법무부의 적극적인 조력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윤 전 대통령은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한 뒤 출국금지 상태라는 것을 보고받고 “부임 일정을 2주 연기하라”고 지시했으며, 이 전 장관은 법무부 협조를 받아 출국금지 이의신청서 양식을 전달받기도 했다.

 

당시 법무부 수장이었던 박성재 전 장관은 이재유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에게서 이 전 장관이 출국금지 이의신청서를 제출한 사실을 보고받은 뒤 “대통령이 호주대사로 임명해서 나가는 것인데 법무부에서 출국금지를 걸어서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맞느냐”며 출국금지 해제를 지시했다.

 

심우정 전 차관도 이 전 본부장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고 “대통령이 이종섭을 호주대사로 임명해서 나가는 것인데 이걸 출국금지 걸어서 못 나가게 하는 것이 맞습니까”라며 마찬가지로 해제 지시를 내렸다.

 

장·차관의 지시를 받은 이 전 본부장은 일선에 출국금지 해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하는 등 출국금지 심의위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공수처로부터 출국금지 해제에 관한 의견을 회신받지도 않은 때였다.

 

이들이 마련한 출국금지 심의위 심사결정서는 “출국금지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공익에 비해 신청인이 입게 될 불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되므로 이의신청을 ○○함”이라며 사실상 해제로 결론 내린 문구가 적혀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출국금지 심의위 당일인 지난해 3월 8일 출근길에서 출국금지 해제에 동의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표명한 행위도 사실상 심의위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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