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하는 민간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지만, 제도 논의는 여전히 발행 자격과 감독 권한 배분에 머물러 ‘시장과 규제의 엇박자’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도 설계가 늦춰질 경우 해외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점유율만 키우고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경쟁력 확보 시기가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다.
국회입법조사처가 7일 발간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보고서에서 “한국은 글로벌 규제 정비 속도에 비해 제도 논의가 뒤처져 있으며 민간의 발행 준비와 정책 설계간 교차점이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며 세 가지 핵심 방향을 제시했다.
올해 7월 미국은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제정해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제도권 편입을 공식화했고, 유럽은 가상자산시장법(MiCA), 일본은 자국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이미 시행 중이다.
미국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약 2762억 달러 규모로 글로벌 시장의 99.6%를 차지한다. 유로 스테이블코인은 약 5억 달러(0.2%), 지난 10월 일본은 약 1500만 달러의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기 시작하며 자국 통화 생태계를 키우는 모습이다. 2028년까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약 2조 달러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국내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금지돼 있지만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은 활발히 유통된다. 지난 6월 기준 국내 거래소 상장 스테이블코인의 시가총액은 약 5778억원으로 글로벌 시장의 0.1%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금융·핀테크 계열사 등 복수의 사업자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조를 검토하거나 준비자산·청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사실상 초기 설계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발행 구조는 해외 규제 모델과 유사한 형태가 논의되고 있지만 제도 부재가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8건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제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정의하고, 은행과 비은행을 포함하는 발행인이 일정한 자본금 요건 등을 갖춰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도록 하며, 현금, 예금 및 단기채권 등으로 구성된 준비자산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일정한 감독·규제체계를 마련하는 등 해외 주요국의 규제 틀을 반영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야 하는지, 국내에서 어떤 수요처를 만들지, 해외 발행 코인의 국내 유통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입법조사처는 국내 논의가 발행 자격 중심으로 기울어진 문제를 지적하며 ▲금융안정·통화정책·외환관리 리스크 최소화를 위한 부처 간 협업 ▲발행 이후 실제 작동을 위한 세부 구조 논의 필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수요처 발굴 확대 및 제도 설계 등 세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외환정책 측면에서는 외국환거래법 개정이 필요하고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유통이 늘어날 가능성에 대비해 이용자 보호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법조사처는 “발행량 통화방식, 준비금 구성, 운영 실패 관리 등 실질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