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직장인 김모(26)씨는 얼마전 피부과에서 카드결제를 하다가 낭패를 당할 뻔 했다. 체크카드의 IC칩이 망가져 결제가 되지 않은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편의점에서 같은 카드를 내밀었지만 역시 제대로 인식이 되지 않았다. 김씨는 "겉으로 멀쩡해보여 IC칩 훼손 사실을 전혀 알지못했다"며 "카드를 발급 받은 지 1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큰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용·체크카드 IC칩이 훼손되는 경우가 빈번해 카드사용자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교적 정보처리량이 많지 않은 체크카드에 신용카드보다 저가인 IC칩이 사용돼 상대적으로 훼손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현재 국내 카드사에 IC칩을 공급하는 회사는 유비밸록스, 코나아이, 한국바이오스마트 등이다. 이들 업체들이 KB국민·롯데·삼성·신한·우리·BC·하나·현대카드 등 8개 전 업계 카드사의 IC칩을 나눠 생산한 뒤 카드에 부착해 카드사에 공급하고 있다.
IC칩 생산업체 관계자는 "체크카드에 들어가는 IC칩은 신용카드에 들어가는 IC칩보다 단가가 200원 정도 저렴하다"며 "체크카드의 경우 계좌에 있는 돈을 빼 쓰는 형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러 가지 기능이 담겨 있는 신용카드 IC칩 보다 저렴해 훼손될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카드업계는 통상적으로 IC칩 유효기간을 카드 유효기간인 5년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카드 유효기간의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아 IC칩이 훼손되는 경우가 있어 고객들은 다시 카드를 발급받아야 하는 등 여러 가지 불편을 겪고 있다. IC칩을 생산하지 않는 카드사도 재발급 외엔 방법이 없어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자동화기기(ATM) 사용이나 인체에서 발생하는 정전기로 훼손이 쉽다는 단점도 제기됐다. 특히 카드 소재가 전기 절연체로 강한 정전기장을 형성하고 있고 IC칩의 경우 방전에 매우 민감해 정전기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정전기는 건조한 상태에서 두 물체가 접촉했을 때 발생하기 때문에 ATM 투입구에 카드를 넣는 경우 정전기가 일어 훼손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카드사들은 재발급 비용이 상당하고 국내 전용 카드의 경우 여신금융협회에서 마련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IC칩을 고르기 때문에 비용절감을 위해 단가가 낮은 IC칩을 사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IC칩의 경우 몇 백원 수준이지만 카드를 재발급하려면 IC칩 뿐만 아니라 카드 플레이트, 패키징, 배송 비용까지 드는데 이 비용을 합하면 2000원 수준"이라며 "재발급 비용이 더 큰 데 일부러 단가가 저렴한 IC칩을 의도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산업체 역시 IC칩도 컴퓨터의 일종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훼손은 불가피하다고 반응이다. 단가가 싼 IC칩을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1996년 비자, 마스터카드 등 국제 신용카드 3사가 공동 제정한 IC카드·단말기 국제 표준규격에 따라 제작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한 생산업체 관계자는 "IC칩도 컴퓨터로 전자제품이기 때문에 스크래치가 난다거나 떨어뜨려 파손되면 훼손될 수 있다"며 "카드가 출고되기 전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치지만 고객에게 발급된 뒤 문제가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개정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2018년 7월까지 전 카드 가맹점이 신규·교체 단말기에 IC카드 우선 승인을 적용토록 해 본격적인 'IC카드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유신 핀테크지원센터장(서강대 경영학과 교수)은 "보안에 강한 IC칩의 경우 앞으로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단기능에서 다기능이 되면 복잡해지는 만큼 취약해질 수 있기 때문에 표준화가 안 된 부분에서는 표준화 작업이 필요하고 기준 마련을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화 기자 jh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