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근원 기자] 수구초심(首丘初心).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뜻과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사자성어다. 가을이 깊어가던 지난달 27일,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으로 알려진 유선관(전남 해남) 한동인 대표를 인터뷰 하면서 기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바로 수구초심이라는 사자성어였다.
“한 번은 지인과 가까운 홍콩의 유력 경제인이 해남을 방문하기로하셨는데 음식은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었지만 마땅한 숙소가 없더라고요.”
서울 삼성동과 수서에서 유명식당을 운영하던 한동인 대표(61)가 유선관 운영의 책임을 맡은 건 불과 2년 전이다. 문화가 경쟁력인 시대, 유독 해남에 가면 많은 먹거리에 비해 잠잘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한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이 유선관이다.

“마치 운명 같은 일이었어요. 해남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 유선관이 있는데 그동안 무허가로 운영되면서 건물이 낡아 쓰러져 가던 상황이었어요. 그게 안타까웠지요. 잘 복구해 제대로 운영하면 좋겠다고 수년 전 대흥사 측에 의사를 전달했는데 그 마음이 부처님한테 닿은 모양입니다. 몇 년 후 유선관을 소유하고 있는 대흥사 측으로부터 전반적인 운영에 관한 제의가 온 거에요.”
한 대표는 망설임 없이 즉각 실행에 옮기기로 맘먹었다. 원래가 뚝심만 믿고 살아 온 그다. 조경업을 해왔기에 한편으론 자신감도 있었다. 서울에서 큰 사업을 하지만 마음은 항상 고향인 전남 해남을 향해 있던 그였기에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고향을 생각하면 아련하기만 했다. 지금은 비록 예전에 살던 고향집이 모두 허물어졌지만 그 곳에 뭔가를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한대표의 가족은 물론 주변사람들이 모두 반대했다. 건물을 소유하는 것도 아니고 손대기도 힘든 문화재 보수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는 것이 무모하다는 의견이었다.

"당시 유선관은 100년이 넘은 목조 건물이라 다 쓰러져 가고 있었어요. 관리 자체가 제대로 안됐으니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이 이대로 방치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단순한 이윤추구의 목적보다 문화적으로 접근한다면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시작된 유선관 개보수는 산 넘어 산이었다. 한 달에도 수십 차례 해남행 SRT에 올랐다.
“개보수가 시작됐는데 유선관 자체가 문화재보호구역, 명승지, 자연공원지구라서 돌 한 개, 풀한포기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더군요. 이모든 걸 문화재청에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해서 그만큼 공사기간도 길어져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한 대표의 해남 사랑은 1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해남 고향마을에 갔더니 옛날 어릴적 살던 집이 없어졌더라고요. 아쉬움이 많았는데 때마침가까운 지인께서 조그마한 땅을 주시면서 집이라도 한 채 지어서 같이 살자고 하는 게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해남 땅끝마을 모노레일도 한 대표의 작품이다. 해남군과 함께 한 공동사업으로 30억 원씩 5대5로 투자해 땅끝마을에 모노레일을 설치했고 운영을 맡아 1년 만에 흑자를 거둔 건 그의 재간이었다. 지금은 운영권을 넘겨줬지만 그의 성공 기준인 '내가 사는 세대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는 사람이 되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한 대표는 올 초 유선관을 새롭게 오픈하고 귀한 손님을 맞았다. 뉴요커로 살고 있는 유명한 여류서양화 작가와 남편 토마스씨가 투숙을 한 것이다.
"객실에 쉬시고 계시는 김 작가님 부부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드렸더니 ‘정말 숨이 멎는 것 같습니다. 경찰을 부를 때까지 안 나가겠습니다.’ 라는 답을 보내셨더라고요.”
한 대표는 그동안 유선관 개보수에 들인 고생이 한 순간에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 감동의 메시지는 지금도 보관중이다.

현재 유선관은 주변을 둘러싼 천혜의 자연환경과 입지. 그리고 지리적으로 훌륭한 접근성과 더불어 소박하면서 편안한 공간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는 ‘웰니스 리조트’다. 8개 객실 중 6개를 운영 중이며 사색의 공간으로 입지가 탁월해 퉇숙객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일주일 이상을 혼자 머물다 가는 장기 투숙객도 많다.
한 대표의 유선관 사랑을 이젠 가족들도 동참해준다. 단순한 지역 명소를 넘어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을 유선관.한 대표의 비전은 지금도 한결같다.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유선관을 잘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한국의 아름다운 명소이자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겠습니다." stara9@sportsworldi.com
한동인대표 약력
함평한우장터 (수서)
서울 우소우소 (삼성동)
월간 아름다운사람 대표
해남 유선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