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의 그림자] 전화 한통에 전 재산 허공…명절 더 극성

- 택배사·가족··공공기관 사칭
- AI 기술 활용 수법 고도화
- 20~40대로 타깃층 넓혀

추석 연휴를 틈타 보이스피싱·스미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교묘하고 AI 등을 활용한 고도화된 수법으로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40대 주부 A씨는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 사칭 문자에 깜빡 속을 뻔했다. 주사용 카드사에서 온 문자에 있는 링크로 신청하려다 며칠 전 본 기사에서 “소비쿠폰 공식 안내에는 ‘링크’가 없습니다”라는 내용이 생각이 나 얼른 해당 문자를 지웠다. A씨는 “정말 감쪽같다. 기사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 링크를 눌렀을 것 같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30대 직장인 B씨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잘못된 주소 정보로 택배 배송이 일시 중단됐으니, 링크를 클릭 후 정보를 업데이트하세요”라는 택배사 문자를 받았다. B씨는 최근 거래처와 지인들에게 자택 주소를 알려줬기에 선물이 온 줄 알고 아무런 의심 없이 링크를 클릭했다. 곧바로 악성 앱이 설치됐고 휴대폰은 먹통이 되고 말았다. 

 

#프랜차이즈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는 50대 자영업자 C씨는 국세청 직원으로부터 미납된 세금이 있다는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국세청 직원은 “세금 포탈 정황이 확인된다”며 “추징금 500만원을 입금하라”고 계좌번호까지 불러줬다. C씨가 망설이자 국세청 직원은 “추징금을 입금하지 않으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겁을 줬고, C씨는 결국 불러준 계좌번호로 돈을 보냈다. C씨는 국세청 직원에게 입금했다고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그제야 C씨는 사기당한 것을 알아챘다.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에 헌신한 70대 D씨는 아들에게서 “암에 걸려 이번 추석에는 내려갈 수 없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들은 치료비가 필요하다고 애원했고, D씨는 곧장 은행으로 달려가 1억원을 인출해 아들에게 송금했다. 하지만 애원하던 아들의 목소리는 인공지능(AI)을 통해 정교하게 변조된 딥보이스였다. 뒤늦게 아들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D씨는 “아들이 아프지 않아 다행이지만 허무하게 날린 노후자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씁쓸해했다.

 

풍요로운 추석 연휴를 틈타 보이스피싱·스미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위의 사례들처럼 일상에 파고든 교묘한 수법은 이제는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택배사, 가족 사칭부터 공공기관 사칭까지 수법은 날로 진화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2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보이스피싱과 스미싱으로 인한 피해액은 7992억원으로 집계되면서 피싱 범죄에 따른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과거에는 인터넷과 IT 기기 등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고령층을 중점적으로 노렸다면 이제는 젊은 20~40대까지 연령층을 가리지 않고 있다. 최근 딥페이크·음성변조 등 AI 기술을 활용하거나 개인정보를 탈취하는 고도의 시나리오를 통해 특정인을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등 범죄수법이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자영업자를 상대로 국세청을 사칭하여 피해자에게 세금 미납 혐의를 추궁하거나, 해외에 체류 중인 교포나 유학생을 상대로 대사관 직원을 사칭한 뒤 해외 마약 사건에 연루됐다고 속이는 등 피해자의 직업이나 환경을 노린 맞춤형 수법들도 확인되고 있다.

 

보이스피싱 중 기관사칭형 피해자의 52%는 20∼30대였고 대출빙자형 피해자의 80%는 경제 활동이 왕성한 40~60대였다. 건당 평균 피해액은 지난해 4218만원에서 올해는 7554만원으로 점점 고액화되는 추세다. 특히 범죄조직이 금융환경 변화에 밝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자산 대부분을 가상자산 형태로 편취하는 양상이 나타나면서 1억원 이상 고액피해 비중도 늘고 있다. 

 

정부 대책이나 이슈에 맞춰 시나리오를 변형하기도 한다. 지난 7월에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발급이 실시되면서 이를 악용해 관련 문자나 카톡을 보낸 뒤 특정 링크에 접속하게 유도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경찰은 “개인 금융정보는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보안에 유의하고, 상대방이 요청하는 현금 또는 가상자산 이체에 응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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