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의무화 시동 득과 실] 사업장 규모별 의무화…노후보장 강화 vs 선택권 침해 팽팽

 

정부가 퇴직연금 제도를 단계적으로 모든 사업장에 의무화하고,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퇴직연금공단을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하지만 노후소득보장 강화라는 긍정적 효과와 근로자의 선택권 침해를 둘러싼 논란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22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퇴직연금 의무화를 추진하되 기업 규모에 따라 퇴직연금 도입을 300인 이상 대기업부터 시작해 5인 미만 사업장까지 5단계에 걸쳐 순차 적용하고, 국민연금·사학연금처럼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퇴직연금공단을 신설하는 개선 방안을 지난달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노동리뷰의 퇴직급여 체불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고용부에 신고된 퇴직급여 체불 총액은 전체 체불액(1조7845억원)의 40%에 달하는 7289억원이었다. 이 중 퇴직금 체불액은 6838억원, 퇴직연금 체불액은 452억원이다. 퇴직금 체불만 전체의 38%에 달하면서 퇴직금 제도가 임금 체불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퇴직연금 도입 사업장은 전체의 26.4%에 그친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91.7%가 퇴직연금에 가입했지만, 5~29인 사업장은 가입률이 41.4%,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은 가입률이 10.4%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431조7000억원으로 2021년 말 약 295조6000억원에서 3년 만에 약 136조원가량 급증했다. 2050년이 되면 국민연금 규모를 추월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공적 연금 성격으로 바꾸기 위해 5단계에 걸쳐 모든 사업장에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되는 것이다. 고용부는 퇴직연금 의무화를 추진하되 단시간에 의무화할 경우 중소 영세 업체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고 기업 규모별로 300인 이상, 100∼299인, 30∼99인, 5∼29인, 5인 미만 등 대기업부터 적용한 뒤 중견·중소기업 및 영세 사업장까지 5단계로 나눠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동계는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퇴직금을 연금화해 장기적으로 노후소득을 보장하면 고질적인 문제인 노인 빈곤율까지 낮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호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변인은 “의무화를 원칙적으로 환영하며 공단 설립을 통한 공공성과 안정성 보장도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밝혔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역시 “적정한 노후소득 보장과 체불 방지를 위해 퇴직연금 의무화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 동의한다”고 반겼다.

 

반면 재계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자칫 지불 여력이 없는 영세사업장의 인건비 부담과 행정 복잡성을 키울 수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수급권 보장을 위해 강제적 의무화는 필요하다고 보지만, 퇴직금 제도에 머물러 있는 기업들의 주된 이유가 재무부담 때문”이라며 “이들에게 유예 기간을 준다고 해서 갑자기 재무 여력이 더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체불 위험이 더 높은 퇴직금을 폐지하고 퇴직연금으로 일원화하게 되면 일시금으로 받는 퇴직금은 사라지게 된다. 일시금 아닌 연금 형태로만 지급하는 것이 근로자의 선택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중도 인출도 문제다. 퇴직연금은 원칙적으로 퇴직 후 일정 나이에 도달해야 받을 수 있지만, 현재도 주택 자금 등 여러 사유로 중간에 찾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현상이 제도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퇴직연금은 국민 개개인이 쌓은 자산인 만큼 운용 방식과 수령 방법은 국민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국가가 일방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국민 청원도 올라온 상황이다. 이에 고용부는 “일시금 수령 폐지는 확정된 것이 아니며, 아직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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