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의무화 득과 실] "구조개혁보다 제도 보완해야"…금융권 기금화에 난색

-시장점유율 위협·수익모델 붕괴 우려
-퇴직연금은 개인 자산…기금화 부적절
-TDF·디폴트옵션 등 이미 활성화 단계
-투자처 다변화·세제 혜택 강화 등 필요

그래픽=권소화 기자

 정부가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퇴직연금 기금화를 검토하면서 금융업권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퇴직연금 사업자인 은행·보험사·증권사는 현재 수익모델이 붕괴될 수 있다며 퇴직연금 기금화에 반발했다.

 

 2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 중인 기금형 퇴직연금은 기존처럼 기업이 금융사와 직접 계약하는 계약형이 아니라 사용자와 근로자가 공동으로 구성한 기금운영위원회가 자산 운용 방향을 결정하고, 전문 운용기관(OCIO)에 자산을 위탁하는 구조다. 국민연금처럼 규모의 경제로 수익률을 올리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 중소기업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말 국민연금 등과 비교해 수익률이 낮은 퇴직연금 자산을 전문적으로 운용하고자 퇴직연금공단을 신설하는 방안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을 각 공단에서 운영하는 것처럼 공적 기관이 퇴직연금 기금을 관리하자는 게 요지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퇴직연금 기금화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이 자리 잡고 있다. 고용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2년 퇴직연금 수익률은 0.02%에 그쳤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수익률도 1.94%로 매우 낮았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 다른 공적 연금들이 이 기간 7~8% 수준의 연 평균 수익률을 올린 것에 비해 5~6%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시장에선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저조한 까닭을 기업이 적립금 대부분을 예금 등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맡겨뒀기 때문이라고 봤다. 퇴직연금 전체 적립금에서 원리금 보장형 상품의 투자 비중은 88.7%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반면 주요 공적연금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위험자산(국내 주식, 해외주식, 대체투자) 투자 비중이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금융권은 퇴직연금 기금화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금융사들은 퇴직연금 시장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20년 넘게 해당 시장에 투자했지만 퇴직연금이 기금화될 경우 이러한 시스템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지난해 10월 은행연합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금융투자협회는 정부부처에 기금형 퇴직연금 반대 입장을 담은 공동 의견서를 전달한 데 이어 최근에도 이러한 의견을 다시 전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권은 공통으로 퇴직연금 기금화 자체에 많이 우려하는데, 특히 퇴직연금관리공단 설립 자체가 금융기관의 시장 점유율을 뺏어가는 형태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은행업계 관계자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타깃데이트펀드(TDF)나 디폴트옵션 도입 등을 추진했고 활성화하는 단계에 있다”며 “민간 금융사에서도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구조를 바꾸기보단 현 상황에서 개선하는 방향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개인의 재산인 셈인데 국가가 기금 형태로 운용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수익률을 고려한다면 확정기여(DC)형은 투자처 제한을 완화하고 세금 혜택을 강화하는 식으로 개선하는 방향이 수익률을 높이는 데 도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의무화는 가입 대상이 확대되는 부분이라 퇴직연금 사업자인 보험업계 전체적으로 반대 명분은 없다”면서도 공단 설립에 대해서는 “현재 민간사업자 간 경쟁체제로 운영중인 시장에 공적연금 기관이 기금조성을 통해 사업자로 참여하는 부분은 전 금융권이 상당한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유은정·이주희 기자 viayou@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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