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김모(36)씨는 화성시 소재의 중소기업에서 2년간 근무했다. 그간 회사를 잘 다닌 김씨는 회사의 경영 상태가 악화되자 월급이 밀리는 일이 생겼다. 월급이 2개월, 3개월씩 밀리자 불안해진 김씨는 회사 대표에게 밀린 월급을 요청했지만, 대표는 “조만간 돈이 나올 거야”라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김씨는 퇴사를 결심했지만 월급뿐 아니라 퇴직금도 주지 않았다.
정부가 국민의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퇴직연금 개혁에 나섰다. 사업장 규모별로 퇴직연금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공적 연금화하는 방안이다. 22일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는 정부가 추진하는 퇴직연금 개혁의 배경과 이에 따른 각종 영향 등에 대해 짚어봤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말 퇴직연금 제도를 단계적으로 모든 사업장에 의무화하고, 퇴직연금공단을 설립하는 방안 등을 담은 퇴직연금 개선 방안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현행법상 퇴직급여는 퇴직금과 퇴직연금제도로 나뉜다. 퇴직금은 회사가 자체적으로 적립했다 근로자 퇴사 시 지급하는데, 이 때문에 체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퇴직연금은 회사가 은행이나 증권사 등 사외 운용기관에 맡기는 구조로 체불 가능성이 낮다. 고용부가 퇴직연금 의무화를 추진하는 이유다.
퇴직연금 미지급을 막겠다는 취지로 정부는 의무화·단일화를 추진하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다. 큰 틀에서는 의무화가 맞는 방향이지만 지불 여력이 없는 영세사업장의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정부는 현재 1년 이상 일해야 받을 수 있는 퇴직급여를 3개월만 근무해도 받을 수 있도록 논의 중이다. 이러한 방안이 현실화되면 3개월 일한 아르바이트생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 때문에 내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의 비용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외부감사대상 법인기업 3만4167곳 중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기업 비중은 40.9%로 나타났다. 기업 10곳 중 4곳은 이자 갚기도 벅차다는 의미다. 이에 자영업자 98만6000명은 지난해 폐업 신고를 했다.
나아가 고용부는 국민연금 등에 비해 수익률이 낮은 퇴직연금 자산을 전문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퇴직연금공단을 신설하는 방안도 보고에 포함했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사학연금을 각 공단에서 운영하는 것처럼 퇴직연금도 공단을 통해 효율적으로 운영해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기존 퇴직연금 사업자인 금융사들은 퇴직연금 기금화에 반대하는 상황으로, 추진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도 퇴직연금 의무화나 기금화를 도입하기엔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에 대한 사각지대도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퇴직연금 의무화를 꺼내는 건 순서가 잘못됐다”며 “퇴직연금을 의무화할 정도까지 노동시장 개혁이 이뤄졌는지부터 짚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