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일본이 다음달 2일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극적으로 무역 협상을 타결했다. 대미 무역에서 우리나라와 경쟁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이 먼저 미국과 무역 협상을 매듭지으면서 정부도 더 다급해졌다. 정부는 새롭게 설정된 상호관세 부과 유예 시한인 8월 2일 전까지 미국과 상호호혜적 협상을 완료하기 위해 숨 가쁘게 움직일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면서 미국이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라고 밝혔다. 이는 기존에 예고했던 25%에서 10%포인트 낮아진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우리는 방금 일본과 대규모 합의를 완료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협의 중 최대 규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 요청에 따라 일본은 미국에 5500억 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며,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될 것”이라면서 “이를 통해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이 자동차와 트럭, 쌀과 일부 농산물 등에서 자국 시장을 개방한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으로 연방 의회 공화당 의원들을 초청한 행사 연설에서 알래스카의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관련해 일본이 미국과 조인트 벤처를 설립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는 미국이 추진 중인 1300㎞ 길이의 알래스카 LNG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3일 무역대상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일본에 대해서는 24%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일 일본에 대한 이른바 ‘관세 서한’을 공개할 때는 이를 25%로 1%포인트 높인 바 있다.
결국 일본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알래스카 LNG 사업을 비롯해 거액을 미국에 투자하는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하는 조건으로 기존 25%의 관세율을 15%로 낮춘 것으로 분석된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이날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과 미국이 일본에 대한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모두 15%로 인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철강·알루미늄 관세는 기존에 적용됐던 50%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시바 총리는 상호관세와 관련해 “대미 무역흑자 국가 중에는 지금까지 가장 낮은 숫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반도체와 의약품 등 경제 안전보장 측면에서 중요한 물자는 만일 향후 관세가 부과될 경우 일본이 다른 나라보다 나쁜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확약을 얻었다”고 말했다. 또 이시바 총리는 이번 합의에서 일본이 농산물 관세를 인하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제시한 상호관세 유예일을 앞두고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이 속속 관세 협상을 타결 지으면서 한국에 대한 압박도 커지는 모양새다. 한국 정부는 정부 고위급이 총출동해 대미 통상외교에 전념하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에 도착한 상태에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3일 방미 비행기에 탑승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조현 외교부 장관도 조만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이다. 25일에는 구 부총리와 여 본부장이 미국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함께 2+2 통상협의를 개최할 예정이어서 무역 협상 타결의 중대 국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는 한국에도 상당한 관세 인하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국과 미국 간 협상 쟁점은 농축산물을 포함한 한국의 대미 비관세 장벽 완화, 미국의 자동차 품목 관세 인하 등이다. 미국과 일본이 합의한 알래스카 LNG 개발 프로젝트 역시 한미 간 협상 의제로 꼽힌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대미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