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 인구정책 해법은?]양성일 전 복지부 차관 "인구 변화에 맞춘 국가 시스템 재설계해야"

고령층 일자리, 단순·단기 아닌 사회적 일자리로 확대
MZ세대에게 출산은 '부담'…생존 문제로 인식

양성일 전 보건복지부 1차관(차의과대학교 보건의료경령대학원 겸임교수)

정부는 저출생·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의 큰 변화를 직면하면서 각종 분야에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이 현실적인 성과로 이어지기까지 요원해 보인다. 양성일 전 보건복지부 1차관(차의과대학교 보건의료경영대학원 겸임교수)는 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정부 인구 정책은 단기적이고 공급자 중심의 접근이었다고 진단하며, 정권 교체에 따른 우선순위 변화로 일관된 방향성과 중장기 계획이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양 전 차관은 “정책 다수가 출산 장려금 같은 일시적 지원책에 머물러 정작 MZ세대가 출산을 주저하는 근본적인 원인인 불안정한 고용, 과도한 입시경쟁, 높은 주거비용, 경력 단절 우려, 불균형한 육아 부담 등에 대한 접근이 부족했다”고 설명하며 출산율을 높이는 중심에 있는 MZ세대의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현재 아동수당, 육아휴직, 보육 시설 확충 등 기본 패키지는 도입됐지만 여전히 임금 정체, 불안정한 고용, 주거 불안 등 MZ세대는 출산을 선택이 아닌 부담으로 인식하는 실정이다. MZ세대가 출산을 부담으로 인식하는 배경에 대해 이에 대해 양 교수는 구조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고 봤다.

 

대표적으로 과도한 교육열로 인한 입시경쟁, 이에 따른 막대한 사교육비와 치열한 경쟁 환경에 아이를 노출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부모 세대에 전가되고 있으며 젊은 층은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인 점을 꼽았다. 양 전 차관은 “자녀를 낳아 기르기 위한 최소한의 정주 기반조차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출산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동수당이나 육아휴직 확대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고 청년 세대의 삶 전반의 불확실성과 경쟁 압력을 완화하는 구조개혁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교육비가 덜 드는 나라’, ‘과잉 경쟁을 줄이는 교육 제도’ 개편과 더불어 주거 사다리 복원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확대’,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 대한 과감한 금융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성평등 육아를 위한 ‘아버지 유급 육아휴직 의무화’ 검토나 직장 내 복귀를 위한 고용 안전장치가 튼실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양하는 사람보다 부양받는 사람이 더 많은 역피라미드 사회가 현실화된다는 전망도 나오면서 재정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양 전 차관은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의료·요양 등 복지 지출은 급증하는 반면, 생산연령 인구 감소로 세수는 줄어드는 구조 속에서 현재 인구 정책의 지속가능성은 작아질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인구 구조 변화에 맞춘 국가 시스템의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언급하며 “지금처럼 출산 장려나 현금성 복지에 치중될 경우 지속가능성은 작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고령자의 노동시장 재편 참여 유도, 예방 중심의 의료체계 전환, 지역 중심의 돌봄 통합체계 강화 등 보건복지 지출 효율성을 높이고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구조적인 접근을 제안했다. 

 

나아가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고령층 경제활동이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된 만큼 이들의 일자리 정책도 재설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양 전 차관은 “신 노년층(55~64세)은 높은 스마트폰 활용률, 양호한 건강 수준, 고학력·중산층 비율이 높아 잠재적 노동 공급원으로 주목받고 있다”면서 “맞춤형 재교육, 디지털 역량 강화, 유연 근무 제도 확대 등에 적극 나서야 하고 단기형 공공 근로가 아니라 지역사회 돌봄, 방문 건강관리, 자원봉사 연계 등 다양한 사회적 일자리로 확대해야 한다”고 봤다. 아울러 “건강보험, 연금제도와 정합성을 고려해 ‘일을 해도 손해 보지 않는 구조’로 설계돼야 지속적인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고령자를 수혜자가 아닌 사회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정책 인식의 대전환이 절실하다”고 보탰다.

 

현재 기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확대·개편해 ‘인구대응전략위원회(가칭)’로 바꾸고 정책과 예산 전반을 총괄하는 인구 위기 대응 컨트롤타워를 구상하고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 문제 외에도 다른 인구와 지방 소멸 등의 문제로도 확장해 정책을 총괄한다는 복안이다. 

 

이에 대해 양 전 차관은 컨트롤타워 성패는 단순한 조직 설치가 아니라 그 안에 얼마나 실질적인 통합적 실행력을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는 “인구대응전략위원회 신설에 대해서는 필요성과 당위성이 분명하다면서도 단순한 기구 신설만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해당 부처가 정책 권한과 예산을 확보하고 부처 간 협업을 조율하는 정치적 위상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와 일본처럼 인구문제를 국정 최상위 어젠다로 두고 정기적 모니터링, 국민 소통이 병행되는 동시에 미래인구 시나리오에 근거해 교육, 주거, 일자리, 복지 전반을 장기적 관점에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도 이제는 출산율 자체보다 ‘왜 출산이 어려운 사회가 됐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할 시점이라는 양 전 차관은 “단기적 성과가 아닌, 미래 세대의 삶을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다면 정부 대책을 중장기적으로 출산율 회복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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