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H-1B비자 수수료 1.4억원으로 100배 인상…국익부합시 사례별로 예외 허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정부가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 비자 수수료를 기존 1000달러(약 140만원)에서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로 100배 인상한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조치는 신규 신청자에 한해 적용되며, 기존 소지자나 갱신 신청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H-1B 비자는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전문직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며 매년 8만5000건으로 제한해 추첨을 통해 발급된다. 기본 3년 체류가 가능하고 연장 및 영주권 신청도 허용돼 글로벌 인재 유치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앞서 전날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H-1B 비자 신청 수수료를 10만달러로 인상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현재 H-1B 비자 추첨 등록비 215달러와 고용주 청원서(I-129) 제출비 780달러 정도인 것과 비교해 파격적인 인상이다. 다만 기존 H-1B 소지자가 미국에 재입국할 경우에는 새 수수료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백악관은 “비자를 신청할 때만 부과되는 일회성 수수료(one-time fee)”라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이날 별도의 자료를 배포해 H-1B 비자 수수료 상향 조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백악관은 “H-1B 프로그램은 미래의 미국인 노동자들이 STEM 직업을 선택할 동기 부여를 저해하며, 이는 우리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 프로그램의 악용을 해결하고 임금 하락을 막으며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H-1B 프로그램을 이용하려는 회사들에 더 높은 비용을 부과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근거 수치도 제시했다. 백악관은 “IT 분야에서 H-1B 비자 노동자 비중은 2003년 회계연도 32%에서 최근 65% 이상으로 증가했다”며 “미국 기업들은 미국인 기술 노동자를 해고하고 이들을 H-1B 노동자로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악관에 따르면 한 미국 기업의 경우 2025년 회계연도에 5189명의 H-1B 비자 승인을 받았지만 미국인 직원 약 1만6000명을 해고했다. 다른 기업은 같은 기간 1698명의 H-1B 비자 승인을 받았고, 지난 7월 오리건의 미국인 직원 2400명의 해고 계획을 밝혔다. 또 다른 회사는 2025 회계연도에 H-1B 승인을 1137건 받고 올해 2월 1000명의 미국인 일자리를 감축했다. 백악관은 “심지어 미국 IT 직원들이 기밀 유지 계약 하에 자신의 외국인 대체 인력에게 업무를 교육하도록 강요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포고문과 관련해 “포고문은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하여금 현재 미국 밖에 있는 외국인이 비자를 신청할 때 수수료가 동반되지 않을 경우 비자 승인을 제한하도록 지시하며,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경우엔 개별 사례별로 예외를 허용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은 미국 기업들이 H-1B 비자를 이용해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외국 인력을 들여와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H-1B 비자는 미국이 전 세계 최고 인재들을 유치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당장 외국인 전문가들을 대거 고용한 미국의 테크기업들에는 비상이 걸린 분위기다. 새 규정이 발표되자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의 테크 기업들은 해외 체류 중인 H-1B 비자 소지 직원들에게 이날까지 미국으로 돌아오라고 강력하게 권고하며 당분간 미국 내에 체류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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