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보험시장을 놓고 생명보험업계와 손해보험업계 간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손해보험사들은 실손보험과 건강보험을 패키지로 판매하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왔다. 하지만 생명보험사들은 이와는 다른 방식의 성장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본지는 29일 한기혁 KB라이프 혁신상품본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바라보는 보험시장과 대응 전략, 향후 계획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 본부장은 KB손해보험과 삼성화재에서 24년간 상품개발업무를 담당했다. 올해 1월 KB라이프로 자리를 옮겨 종합건강보험 상품개발을 진두지휘 해오고 있다. 손보사들이 건강보험 시장에서 급성장한 시기를 몸소 경험한 그는 특히 이 분야에 대한 생보사의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 본부장은 건강보험 분야에서 생보사의 성장성이 앞으로 더 기대된다면서 날로 커지는 시니어 비즈니스와의 연계 등을 통한 성장전략을 예로 들었다. 생명보험업의 본질적 가치와 그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건강보장이 손보사의 실손보다 더 연결점이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KB라이프는 올해 건강보험 신상품 출시를 시작으로 제3보험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다. 시니어 비즈니스와의 시너지 창출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고객중심의 상품혁신을 본격화하고 있다.
건강보험과 시니어 비즈니스와 연결 전략은 단순한 보험상품 판매를 넘어서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는 통합 라이프케어 플랫폼 구축이라는 큰 그림을 가지고 있어서다.
요양사업과 건강보장 간 결합 외에도 시니어 고객에 대한 디지털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 통합모델을 구축해 고객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KB라이프만의 차별화된 생애주기 토탈케어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3보험시장의 경쟁력…건강보험과 시니어케어
한 본부장은 KB라이프의 제3보험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방안을 묻는 말에 건강보험과 시니어케어의 투트랙 전략을 제시했다. 이는 KB골든라이프케어를 중심으로한 실버타운, 요양시설 운영 확대와 맞물려 건강보험과 시니어케어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 본부장은 “궁극적으로는 건강보장 뿐만 아니라 요양서비스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핵심 전략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다수의 생보사들은 건강보험에만 집중하거나 치매∙간병보험만을 단건으로 판매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비슷한 상품으로 한도 경쟁만 치열해지고 보험상품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KB라이프는 강점인 시니어케어와의 연계를 통해 경쟁사와의 차별점을 적극적으로 부각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제3보험 시장에서의 본원적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업황 부진 속 올 상반기 실적 2.3% 증가…요양사업도 활발
KB라이프는 보험시장의 수익성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2.3% 늘었다. 특히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요양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요양시장 규모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다수 보험사들의 요양업 진출도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본부장은 “요양사업은 현재와 미래 모두 매우 중요한 성장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새 정부가 들어선 올해를 기점으로 큰 변화와 여러 기회 요인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시니어 고객의 1인실 선호 경향을 반영한 프리미엄 요양시설 같은 서비스 수요는 결국 보험을 통해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머지않은 미래에 누구나 요양보장 상품을 하나쯤은 가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자신했다.
◆보험업서 20여년…여전히 상품개발에 매진
한 본부장은 20년 넘게 보험업계에 몸 담아왔다. 하지만 상품 개발에 대한 의지는 20년 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는 “건강보험을 주요보장 단위로 모듈화해 매번 여러 회사 상품을 복수로 가입할 필요 없이 KB라이프의 앱을 통해 자유롭게 모듈을 추가하고 쉽게 변경할 수 있는 건강상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밝혔다.
생애주기나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 보장범위에 대한 고객 요구는 매번 바뀌는 반면 보험상품은 경직성으로 인해 해약과 신규 가입을 반복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본부장은 “계약체결 단계부터 보험금 지급까지 전체 밸류체인을 모바일로 간편하게 구현하고 가입 이후에도 무사고 기간에 따라 보험료가 자동으로 할인되는 혜택을 준다면 굳이 여러 회사의 상품을 신규로 가입하지 않아도 고객들이 충분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 본부장은 보험상품 기획에서 숫자와 인문학의 결합은 매우 중요한 철학적 접근이 된다고도 언급했다. 이는 단순히 통계와 리스크를 기반으로 한 상품이 아니라 사람의 삶, 가정, 가치관을 반영한 고객 중심의 상품을 의미한다.
한 본부장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보험에서 연령별 질병발생률과 소득의 변화를 기반으로 인생의 전환점(결혼, 출산, 은퇴)과 같은 인간의 불안과 희망을 접목해 연령대에 따라 보장내용이 바뀌는 상품구조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복잡한 상품 구조와 과열 경쟁으로 신뢰 악화
한 본부장은 보험업계에 대한 따끔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고객이 보험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안전망으로 인식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상품구조나 과열된 경쟁환경으로 인해 보험에 대한 신뢰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개개인에 대한 맞춤형 보장을 원하고 있지만 현재 판매 중인 대부분의 보험 상품들은 획일화된 경향이 크다. 보험은 미래에 대한 인간의 불안∙두려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매우 딱딱한 언어로 고객을 대하고 있기도 하다.
한 본부장은 이같은 점을 지적하면서 “보험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라 언제 발생할지 모를 위기 상황에서 공백없이 고객을 지켜주는 약속이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고객의 감정과 삶의 맥락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며 “고객에게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쉬운 보험상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직 관리의 핵심…자유로운 아이디어 제안
한 본부장은 혁신상품본부 내에서 나온 새로운 아이디어를 직접 실행하는 문화를 정착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선 구성원들이 실패나 비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조직 분위기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한 본부장은 “결과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도전과 실험 자체를 인정하는 보상체계를 만들고, 실패를 숨기지 않고 공유하면서 더 나은 방향을 찾아내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상품본부가 건강보험 상품개발이 본업인 만큼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모두가 함께 검토하고 상품화까지 이어지는 실행 프로세스를 구축할 계획도 전했다.
한 본부장은 10년 뒤 KB라이프의 상품이 단순히 보장 중심의 보험을 넘어서 고객의 삶 전반을 케어하는 통합 솔루션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꿈꾸고 있다. 보험을 넘어 인간의 삶을 세심히 보살피는 KB라이프의 미래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노성우 기자 sungco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