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창립한 ㈜태원정공이 올해로 31주년을 맞았다. 자동차 도장 설비용 노즐로 출발한 이 회사는 이제 조선용 플라즈마 절단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글로벌 정밀 노즐 전문기업으로 도약했다.
부산 강서구에 본사를 둔 태원정공은 국내 조선 3사를 비롯해 해외 시장에도 제품을 수출하며 수출 비중이 전체의 절반 수준에 달한다. 과거 1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으며 내년에는 300만불 달성도 가능하다는 것이 김준영 대표의 자신감이다.

◆자동차 도장에서 조선 플라즈마 절단으로…‘노즐 기술’ 31년의 진화
태원정공의 출발점은 자동차였다. 1990년대 중반, 현대자동차의 당시 최고급 세단 에쿠스 도장 라인에 들어간 노즐이 바로 해당 제품이었다. 미세 분사 각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도장 공정에서 노즐의 정밀도는 절대적이다.
이후 회사는 정밀 노즐 가공 기술을 기반으로 플라즈마 절단 기술로 확장했다. 김 대표는 “자동차 도장은 정밀한 분사, 플라즈마 절단은 정밀한 절단 즉, 결국 핵심은 가스를 얼마나 균일하게 제어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기술의 맥을 짚었다.
플라즈마 절단은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금속을 초고온 상태로 녹여 자르는 공정이다. 이때 노즐은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형성하는 핵심 부품으로 미세한 가공 오차가 절단 품질과 수명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태원정공은 노즐 내부 유로를 100분의 1㎜ 단위로 제어하며 현미경 검사를 통해 모든 부품을 실시간 검증한다. 김 대표는 “노즐의 중심선이 0.01㎜만 틀어져도 절단면이 거칠어진다”며 “저희는 100개 중 99개 합격이 아니라 100개 전부 합격을 목표로 한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공장 내부는 정돈된 긴장감이 흐른다. 절단용 노즐과 전극, 보호캡이 트레이 위에 정렬돼 있고 작업대마다 전자현미경이 설치돼 있다. 직원들은 실측 데이터를 즉시 확인하며 미세한 가공 흔적 하나까지 기록한다. 김 대표는 “우리에겐 ‘공정’이 아니라 ‘검증’이 일과의 중심”이라고 덧붙였다.

◆원자재 급등 속 ‘무결점 전략’… “속도보다 완벽이 우선”
최근 2년 사이 원자재 시장은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플라즈마 노즐의 주요 소재인 은과 구리의 가격이 지난해 대비 각각 85%, 50% 상승했다. 김 대표는 “소재 가격이 오르면 단가를 올리기보다 불량률을 줄여 원가를 방어해야 한다”며 “생산 속도를 약간 늦추더라도 완벽한 품질이 이익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태원정공은 이에 따라 공정별 계측 강화, QC(최종 포장 전 검사) 체계 고도화, 실시간 현미경 검사를 통한 즉시 피드백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모든 공정 데이터는 디지털 로그로 축적돼, 향후 품질 클레임 발생 시 ‘추적 가능한 생산 이력’을 제공한다.

◆부산에서 세계로…조선벨트 중심의 입지 경쟁력
태원정공이 부산 강서구로 공장을 옮긴 것은 단순한 이전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었다. 거제·울산 조선벨트와 가까운 입지 덕분에 국내 주요 조선소의 긴급 납품 요청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김해공항과 인접해 있어 해외 물류와 고객 방문에도 유리하다.
김 대표는 “수출 비중이 절반을 넘기 때문에 물류 효율과 접근성이 중요하다”면서 “부산은 조선, 기계, 금속, 항만이 다 모여 있는 도시다. 이곳의 산업 DNA가 바로 우리 같은 회사의 뿌리로써 기술도 결국 지역에서 태어나고 지속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산에서 시작했으면 부산에서 커야 한다”며 “사람도, 거래처도, 현장도 다 여기 있다. 지역이 살아야 기업이 산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지역 제조업의 명맥을 잇겠다는 강한 의지가 묻어났다.
현재 태원정공의 제품은 일본, 중국 등 아시아 및 미국, 유럽 시장으로 수출된다. 글로벌 플라즈마 브랜드들과 호환되는 라인업을 구축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조선기자재 시장에서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김 대표는 “고객들은 단순히 부품을 사는 게 아니라 절단의 신뢰성을 사는 것”이라며 “우리는 신용을 수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MASGA 시대 앞둔 전략적 대응
최근 한·미 양국이 추진 중인 MASGA 프로젝트(Make American Shipyards Great Again)는 미국 내 조선산업 재건과 전략적 연계를 목표로 하는 대형 산업 구상이다. 미국 내 조선소 설립부터 유지보수(MRO), 기자재 공급망 재편, 인력 양성까지 조선 생태계 전반을 포괄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노즐 부품 기업인 태원정공도 MASGA가 가져올 기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준영 대표는 “MASGA는 단순한 조선 수주 프로젝트가 아니라, 조선 생태계의 전략적 재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노즐과 전극 같은 소모성 부품은 대형 선박이든 군함이든 절대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다. MASGA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 이러한 부품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다만 현실적 리스크도 함께 인식하고 있다. 그는 “미국은 노동비용이 높고, 현지 법규 및 조달 체계가 복잡하다”며 “MASGA에 참여하려면 기술 경쟁력만큼이나 해외 공장 운용 역량과 공급망 다변화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태원정공은 이러한 리스크를 고려해 현지 생산 가능성 탐색, 글로벌 고객사와의 기술 협업, 물류망 최적화를 주요 전략 과제로 설정해두고 있다.
태원정공은 MASGA라는 시대적 흐름 앞에서 ‘국내 기술력과 글로벌 전략’의 융합을 시험대 위에 올리게 됐다. 김 대표는 “우리 기술이 미국의 해양 산업에도 당당히 기여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며, “작지만 강한 부품 기업으로서 MASGA 시대의 작은 축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시니어 베테랑과 청년 도제 “사람이 품질이다”
태원정공의 현장은 시니어와 청년이 함께 움직인다. 회사는 부산시의 ‘선도기업’, ‘뿌리기업’, ‘시니어 고용 창출 우수기업’으로 지정돼 있으며 20년 이상 근속한 직원이 절반 이상이다. 김 대표는 “정년이 지나도 건강이 허락하면 계속 함께 간다”며 “숙련자의 손끝 감각은 기계로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청년 인력 양성을 위해 지역 공업고등학교 등과 도제(현장 실습) 협약을 맺어 매주 실습을 운영 중이다. 김 대표는 “요즘 학생들이 설계나 사무를 선호하지만 현장에서 기계를 만져보면 눈빛이 달라진다”며 “결국 기술은 손에서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잔업과 특근을 줄이는 대신 일부 공정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숙련자와 신입 간의 생산 효율을 높였다. 김 대표는 “사람이 행복해야 품질이 안정된다”며 “무결점은 기술이 아니라 분위기에서 나온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인력들이 제조산업을 기피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기술직의 가치가 다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학교와 기업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SG와 사회공헌, “작지만 진짜로 실천”
태원정공의 ESG(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 구조) 경영은 화려하지 않지만 실질적이다. 3년 전부터 포장재를 친환경 종이 패키지로 전환했으며 플라스틱·비닐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있다. 목표는 2027년까지 포장재 100% 재생용지화다. 또한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소화영아재활원 등에 오랜 기간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김 대표는 “우리 규모에서 거창한 걸 하긴 어렵지만, 꾸준히 돕는 게 진짜 ESG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단순히 이미지가 아니라 내부의 문화로 연결돼야 한다”며 “직원들이 회사를 ‘착한 회사’라고 느껴야 진짜 변화가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조선업, 전환기의 한복판에서
올해 들어 글로벌 조선업은 숨 고르기 단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수주잔량은 여전히 2~3년 치 수준으로 유지되고, LNG 운반선·이중연료선·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 선종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또한 환경 규제가 산업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EU의 탄소배출권(ETS) 확대와 연료 효율 규제, 국제해사기구(IMO)의 탈탄소 로드맵은 선주들에게 ‘효율·연료·엔진’이라는 삼중 과제를 던졌다. 이에 따라 조선 기자재 업계는 고효율, 친환경, 경량화 기술로 전환 중이다.

김 대표는 “자동화와 환경 기술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며 “특히 절단 공정은 선박 건조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정밀도 하나로 전체 공정 효율이 바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즐처럼 작은 부품이지만 이게 잘못되면 수십억짜리 선박 블록이 잘못 조립될 수도 있다”며 “그래서 우리는 작은 부품 하나가 큰 선박을 좌우한다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경영 철학은 ‘지휘자론’으로 요약된다. 그는 “대표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며 “각 파트의 최고 연주자가 자신의 악기를 제대로 울릴 수 있도록 돕는 게 제 역할”이라고 했다. 또한 규모보다 내실을 강조한다. 그는 “이탈리아에도 직원 50명 남짓한 부품사가 100년을 이어가고 있는데 저희도 그런 회사가 되고 싶다”며 “직원들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직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부산=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