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6·27,10·15 등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를 내놓으면서 실수요자와 서민층이 대출 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대출로 집값 부족분을 메우는 방식의 자금 계획이 사실상 막혀, 집이 한 채뿐이거나 아예 없는 실수요자들조차 교육·결혼·이사 등 일상적인 주거 이동이 어려워졌다.
더불어 자금 마련이 어려워진 서민층은 제2금융권으로 몰리고 있으며, 자동차를 담보로 한 대출 건수도 규제 시행 이후 두 달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서 상담을 받은 경찰공무원 A씨(연봉 7500만원)와 IT기업 재직 배우자(연봉 5500만원)는 내년 초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성동구의 31평형 아파트로 이사를 계획했다.
올해 5월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기존 6500만원 신용대출을 유지한 상태에서 최대 6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러나 6·27 대책 이후 주택담보대출 최장기간이 40년에서 30년으로 줄고, 7월부터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까지 시행되면서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5억2400만원으로 축소됐다.
여기에 이번 10·15 대책으로 스트레스 DSR 가산금리 하한이 1.5%포인트에서 3.0%포인트로 상향되자, 대출 가능액은 4억4700만원으로 더 줄었다. 다섯 달 사이 주담대 한도가 25% 가까이 감소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집값 상승이다. A씨 부부가 눈여겨본 아파트는 시세가 13억5000만원에서 14억8500만원으로 올랐다. 만약 15억원을 넘으면, 10·15 대책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대출이 최대 4억원까지 떨어진다.
은행권 관계자는 “집값이 높을수록 담보력이 충분한데도 대출이 줄어드는 규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고객이 많다”며 “실수요자까지 다주택자와 동일한 규제를 받으며 대출 상담이 중단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강도 높은 대출 규제로 자금 마련이 어려워진 서민층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6·27 대출 규제 시행 이후 약 두 달간 저축은행에 접수된 개인 자동차담보대출 신청 건수는 24만800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규제 이전(1~5월) 일평균 2230건보다 약 150% 늘어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일평균 대출 취급액도 67억9000만원에서 84억9000만원으로 25% 증가했다.
반면, 저축은행의 개인신용대출은 일평균 4930건에서 3614건으로 27% 감소했고, 상호금융권 대출도 18% 줄었다.
자동차담보대출을 취급하는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진 차주들이 자동차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사례가 급증했다”며 “서민금융 상품에 대한 수요가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2금융권의 대출 기능이 위축되면서 자영업자·서민층이 대부업이나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용대출이 주택 구입에 활용되는 경우를 차단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다만 서민금융 접근성 악화를 최소화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1금융권이 기업 대출, 2금융권은 소비자 대출 등 서민금융을 위주로 맡도록 유도해 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