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도우미견’ 구름이의 1박2일 경주여행

경주 대릉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원서연 씨와 구름이. 원서연 씨 제공

 

멍멍, 안녕하세요. 저는 13살 강아지 ‘구름이’에요.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는 (원)서연이 누나를 돕는 청각장애인도우미견이죠.

 

우리 누나는 2살 때부터 아주 큰 소리가 아니면 듣지 못한다고 해요. 성인이 되어 독립해서 살아보니 일상생활이 너무 불편하고 또 위험하기도 했대요. 그러다 청각장애인도우미견의 존재를 알게 됐고 장애인도우미견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저와 만나게 됐어요. 그게 2018년이니 벌써 7년째 함께하고 있죠.

 

누나랑 저는 여행을 자주 다녀요. 제주도도 함께 다녀온 적 있죠. 이번 가을에는 경주를 다녀왔어요. 견생 처음으로 반려가족 전용 호텔에서 묵고, 천년수도라는 경주의 유명 관광지에도 발자국을 찍었답니다. 우리 1박2일 경주 여행기를 들어보실래요?

 

◆강아지 마음을 너무 잘 아는 호텔 ‘키녹’

 

이번 여행은 행운에서 시작했어요. 지난 6월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개최한 반려동물 행사를 방문했다가 후원처인 반려가족 전용호텔 키녹의 숙박권에 당첨됐거든요. 10월 17~18일로 숙박 날짜를 정했고 설렘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죠.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도착한 키녹은 경주 보문관광단지 안에 있었어요. 객실에 들어가자마자 강아지용 침대가 보여서 달려갔어요. 커버도 새 것이어서 다른 강아지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죠. 제가 침대에 누워서 너무 좋아하니까 누나가 “구름아, 이거 사줄까?”라고 했어요. 강아지 샴푸, 간식, 영양제, 탈취제 같은 어메니티는 기분 좋은 선물이었어요.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 반려가족 전용 호텔 키녹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구름이. 원서연 씨 제공
키녹 객실의 반려견 전용 침대에 앉은 구름이. 원서연 씨 제공

 

또 미끄럽지 않은 바닥재, 계단을 대신한 경사로는 13살 노령견인 제 무릎에도 부담을 주지 않아 좋았어요. 깜빡임이 없는 플리커프리 조명이라 눈이 아프지 않았고, 밥그릇과 물그릇은 유리가 아닌 스테인리스 재질이라 깨질 위험이 없어서 좋았답니다. 또 큰 창문 바로 옆에 시트가 있어서 거기 올라가서 창밖을 바라보기 편했어요. 우리 강아지들은 대부분 창문으로 바깥 세상 보는 걸 좋아하죠. 강아지 욕실도 따로 있어서 신기했어요.

 

초인등도 기억에 남아요. 초인종을 대신한 것인데, 강아지가 갑작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라지 않게 배려한 것이라고 해요. 사실 청각장애인도우미견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초인종 소리를 듣고 주인에게 알려주는 것이에요. 소리가 들리면 주인에게 달려가서 점프를 하거나 발로 긁는 식으로 알리죠. 장애인도우미견 훈련센터에서 반복 학습하면서 익혔어요. 휴대전화 알람, 물 끓는 소리, 화재경보, 노크, 차량 경적 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알린답니다. 객실에서 푹 자고 다음날 아침에도 휴대전화 알람소리를 듣고 누나를 깨웠죠.

 

카페 스니프에서 반려견 전용 좌석에 앉은 구름이. 원서연 씨 제공

 

호텔 로비에 있는 카페(스니프)도 누나와 함께 갈 수 있었어요. 저는 멍푸치노, 누나는 빵과 커피를 마셨어요. 식탁 옆에 강아지 전용 의자도 있어서 누나와 눈을 맞추면서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야외 펫파크, 실내 놀이터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키녹은 강아지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배려하는 곳이라고 느꼈어요. 누나가 “구름이 덕분에 호강했다”고 말했어요.

 

아쉬운 점을 굳이 찾자면 강아지 먹거리가 조금 더 늘었으면 좋겠어. 도자기 만들기, 간식 만들기 같은 체험프로그램도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황리단길, 월정교 야경 함께… 도우미견 널리 알려졌으면

 

사실 이전에도 누나와 경주를 여행한 적이 여러 번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이전에 가보지 않은 곳 위주로 방문했어요. 황리단길은 구경거리가 많아 재미있었고, 월정교는 야경이 정말 멋졌어요. 교촌마을에서는 여유롭게 쉴 수 있었어요. 마치 궁궐 같았던 경주 대릉원점 스타벅스도 기억에 남아요. 분위기가 매력적이었어요.

 

경주 월정교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구름이. 원서연 씨 제공

 

누나는 경주에서 먹은 음식들이 기억에 남는대요. 교촌마을에서 먹은 인절미떡과 대추차가 맛있었대요. 단향회 식당에서 먹은 손말이고기(미나리버섯)는 최고였구요. 제가 보기에도 누나가 정말 맛있게 먹더라구요.

 

전체적으로 색다른 경험이 많아서 만족스러운 여행이었지만 아쉬운 점도 조금 있었어요. 식당과 카페에 갈 때 “강아지는 같이 들어갈 수 없다”면서 막는 직원이 종종 있었어요. 사실 장애인도우미견은 어느 곳이든 주인과 함께 갈 수 있어요. 하지만 청각장애인도우미견은 시각장애인도우미견보다 조금 덜 알려져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시각장애인도우미견은 리트리버처럼 대형견인데 청각장애인도우미견은 저처럼 소형견이라 일반적인 반려견으로 오해하는 것 같아요.

 

사실 그래서 청각장애인도우미견임을 알리는 조끼를 항상 입고 있어요. 그런데도 설명을 반복해야 하니까 누나가 조금 힘들어했어요. 청각장애인도우미견이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지길 바라요.

 

다른 강아지 친구들은 아예 입장을 할 수 없어서 그런 점도 안타까웠어요. 강아지와 함께 갈 수 있는 관광명소, 음식점, 카페 등이 여전히 많아요.

 

경주 관광지를 걷고 있는 구름이. 원서연 씨 제공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이 기사는 최근 경주를 여행한 중증청각장애인 원서연씨의 소감을 청각장애인도우미견 구름이의 시선으로 각색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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