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후배’가 각본을 쓴 영화를 제8회 서울동물영화제에서 볼 수 있다. 영화제는 오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인디스페이스, 퍼플레이(온라인 상영관)에서 개최된다.
서울동물영화제 사무국은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각본을 쓴 영화 '토리노의 말'이 이번 영화제의 특별전 ‘애니멀 턴 : 동물-영화사’에서 상영된다고 23일 밝혔다.
벨라 타르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세계 영화사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사유하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마부에게 맞는 말을 끌어안고 오열한 실화에서 출발하는 영화는 그 이후의 시간, 즉 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문명과 인간 중심주의의 붕괴를 사유한다. 작품에서 말은 더 이상 인간의 고통을 비추는 거울이나 상징이 아니다. 그는 인간과 함께 소멸해가는 동등한 주체로 존재하며, 영화는 그 침묵과 반복 속에서 윤리의 근원적 의미를 되묻는다.
앞서 스웨덴 한림원은 라슬로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며, 그의 작품을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시켜 주는 강렬하고 통찰력 있는 작품”으로 평가했다. 그의 문학 세계는 끝없는 몰락과 파국의 풍경 속에서도 예술의 윤리를 탐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세계관은 벨라 타르 감독과의 협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라슬로는 벨라 타르의 대표작 ‘사탄탱고’와 더불어 토리노의 말 각본을 맡아, 인간과 세계, 움직이기를 멈춘 한 마리의 말이 이끄는 종말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특별전은 해당 작품 외에도 크리스 마커, 마야 데런, 로베르 브레송 같은 거장의 작품이 함께 상영돼 동물과 영화사를 다룬다. 황미요조 프로그래머는 “이번 특별전은 기존 영화사가 구축한 중심을 흔들고, 동물을 재현의 대상이 아닌 ‘영화적 사유의 주체’로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이번 서울동물영화제는 ‘비로소 세계(The World That Therefore We Become)’라는 슬로건 아래 28개국 48편 작품이 상영된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