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등 디지털 자산 저변 확대가 논의되는 가운데 이를 이용한 범죄가 나날이 고도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해외에서는 가상자산 관련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불법 자금을 동결하는 등 적극 조치에 나서고 있다.
28일 크립토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 분석에 따르면 불법 거래에 사용된 가상자산 규모가 2020년 78억 달러에서 2022년 396억 달러, 지난해에는 약 510억 달러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 가운데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사용 비중은 같은 기간 13%에서 63% 수준으로 높아졌다.
체이널리시스의 에릭 자르딘 사이버범죄 연구 총괄은 “국제 조직범죄 그룹을 포함한 점점 더 많은 범죄자들이 가상자산을 활용해 마약 밀매, 도박, 지식재산권 도용, 자금세탁, 인신매매, 야생동물 밀매, 폭력 범죄 등 전통적인 범죄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며 “일부 범죄 네트워크는 여러 유형의 범죄 활동을 결합한 폴리크라임을 저지르기 위해 가상자산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테이블코인이 불법 활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자금세탁이다. 각국의 암호화폐 거래소를 해킹해 탈취한 자산을 테더(USDT)로 전환한 뒤 이를 수십 개의 지갑으로 분산 송금하거나 믹서(mixer) 서비스를 통해 추적을 어렵
게 만드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에 미 재무부는 2022년 8월 믹서 플랫폼 토네이도 캐시(Tornado Cash)를 제재 대상에 올리기도 했다.
또한 국제 제재 회피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이 활용되는 사례도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등 기존 금융망을 사용할 수 없는 제재 국가들이 스테이블 코인을 이용해 무역 대금이나 수입 비용을 결제한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다크웹과 불법 온라인 거래에서도 스테이블 코인이 악용되고 있다. 마약, 불법 무기, 아동 성착취물 등의 거래에서 가치가 안정적인 스테이블 코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국제기구들은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대응 필요성을 역설하는 상황이다. 한은은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주요 이슈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러한 리스크에 대응하면서 지급결제시스템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의 은행 기반 통화· 금융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디지털유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에서도 범죄 예방에 나섰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는 블록체인 범죄 척결을 위한 글로벌 협력 체계 구축에 나섰다. 바이낸스는 지난 8월 블록체인 기반 불법 활동 방지를 위한 글로벌 협력 프로그램 T3+ 멤버로 합류했다. T3+는 범죄성 자금의 실시간 추적과 차단, 업계 전반의 보안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적 연대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9월 설립 후 전 세계 5개 대륙에서 2억5000만 달러가 넘는 불법 자산을 동결했다. 또한 30억 달러 이상 규모의 거래를 분석하며 대규모 범죄 네트워크를 신속하게 식별하고 차단했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