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스포츠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경기 퍼포먼스 분석부터 부상 예측, 판정 자동화, 팬 경험 개인화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이 데이터와 알고리즘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 AI는 단순 기술 도입 단계를 넘어 스포츠 산업의 가치사슬 전체를 재구성하는 핵심 동력으로 떠오른다. AI 전문기업 초록소프트가 31일 글로벌 시장의 현황과 국내 시장에서 도전 의지를 밝혔다.
◆‘150만 달러’ 치열한 AI 스포츠 시장 선점 경쟁
현재 AI 스포츠 시장은 미국과 캐나다가 중심이 된 북미 대륙에서 사실상 독주하고 있다. 스포츠 베팅 및 미디어 데이터 시장의 거물인 스포트레이더, 축구 팬들에게 옵타(Opta) 데이터로 유명한 스탯츠 퍼폼, 독일 기업용 소프트웨어 강자이자 구단 운영 솔루션 ‘Sports One’을 제공하는 SAP 같은 글로벌 데이터 기업들은 이미 NBA, NFL과 같은 메가리그와 독점적 파트너십을 맺은 상태다.
이들은 실시간 경기 분석, 베팅 데이터 제공, 미디어 콘텐츠 자동화 등 다양한 사업 영역을 포괄하며 AI를 스포츠 비즈니스의 ‘공용언어’로 격상시키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전 세계 AI 스포츠 시장 규모는 2023년 약 23억 달러에서 2030년 150억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과학적 훈련’과 ‘공정성’ 담보하는 AI
AI 스포츠 시장의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은 그라운드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선수 기량을 극대화하고 경기 공정성을 담보하는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Zone7이 제공하는 AI 솔루션은 훈련 강도, 회복 속도, 피로도 등을 종합 분석해 부상 리스크를 사전에 예측하고, 구단이 훈련 강도를 최적으로 조정하도록 돕는다. 아일랜드의 Kitman Labs 역시 구단 내 의료 및 피트니스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선수 관리를 증명했다.
AI는 심판 역할도 수행한다. FIFA 월드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에 도입된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SAOT) 기술은 센서와 카메라 데이터를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해 오프사이드 여부를 정확히 가려낸다. 테니스의 호크아이(Hawk-Eye)는 공의 궤적을 정밀 분석해 판정 오류를 최소화하며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NBA, ATP, FIFA 등 주요 단체에서 AI 판독 시스템을 경기 운영의 핵심 인프라로 적극 채택하고 있다.
◆ AI가 재창조하는 ‘초개인화 팬 경험’
AI의 영향력은 팬 경험의 개인화로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 디즈니는 최근 AI 기반 콘텐츠 큐레이션을 도입한 ESPN 앱을 공개했다. 사용자 선호도에 따라 실시간으로 경기 하이라이트를 생성하고, AI 음성 내레이션으로 개인화된 중계를 제공한다.
AI 스포츠 미디어 분야의 선두주자인 WSC Sports는 경기 중 주요 장면을 자동 식별하고 하이라이트 영상을 즉시 생성하는 솔루션을 전 세계 300여 개 리그에 제공 중이며, 지난 6월 서울 지사를 설립하며 한국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또한 IBM watsonx는 US Open 등 국제 대회에서 AI가 생성한 코멘터리, 하이라이트, 데이터 인사이트를 실시간 제공하며 팬 경험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태동기 국내 시장… ‘초록소프트’ 선제적 행보 눈길
국내 AI 스포츠 데이터 시장은 태동기라고 볼 수 있다. AI 전문기업 초록소프트는 ‘인공신경망을 이용한 프로야구 경기 실시간 예측 방법’ 등 AI 기반 스포츠 분석 특허를 다수 보유한 기업이다. 최근 LLM(거대언어모델) 기반의 대화형 스포츠 정보 챗봇 ‘WOMBET’ 개발에 나서며 본격적인 시장 개척을 예고했다. 이는 경기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팀 전력, 선수 기록, 승패 예측 등을 실시간 대화형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초록소프트 관계자는 “국내 스포츠 시장은 AI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을 이제 막 인식하기 시작한 단계”라며 “단순한 승패 예측을 넘어 선수 기량 분석, 부상 관리, 팬 개인화 소통 등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하는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축적된 AI 기술력과 스포츠 전문성을 기반으로 국내 스포츠 구단과 미디어가 합리적인 비용으로 고품질의 분석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도록 시장 기반을 확장하겠다”고 강조했다.
◆잠재력 높은 한국시장… AI가 비용 장벽 허문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모바일 중심 스포츠 콘텐츠 시장이다. KBO리그와 K리그에서 하이라이트 영상과 실시간 데이터 분석을 강화하는 추세라 AI 기반 자동화 및 맞춤형 서비스 도입에 유리한 환경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도화된 데이터 분석 수요에도 불구하고 실제 산업 확장은 더뎠다. 가장 큰 장벽은 역시 비용 문제였다. 막대한 자본과 전문 분석 인력,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고비용·저효율 구조 탓에 소수 구단이나 대형 방송사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래도 최근 급속도로 발전한 AI 기술이 높은 문턱을 낮추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AI는 스포츠 산업의 성장축으로 기대받는다. AI는 스포츠를 단순한 경기에서 데이터 비즈니스로 전환시키고 있으며, 스포츠 산업은 지능형 스포츠 경제’라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