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예산, 양은 늘었지만 질은 제자리…시민사회, ‘미완의 예산안’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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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첫 보건복지 예산안을 평가하는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예산 총규모는 확대됐지만 공공서비스 강화보다는 산업화 중심의 편성이 두드러진다며, 복지의 ‘질적 전환’이 부재한 미완의 예산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박주민·이수진·김남희·김선민 의원은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2026년도 보건복지예산안 분석 토론회’를 열고 정부 예산안의 방향성과 한계를 논의했다. 이번 토론회는 국회 예산심의를 앞두고 이 정부의 첫 복지 예산안을 평가하기 위해 마련됐다.

 

총론 발제를 맡은 최혜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은 “2026년 보건복지부 총지출 예산은 137조6480억원으로, 정부 총지출의 20.4%를 차지한다”며 “전년 대비 9.7% 늘었지만 자연증가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재정 투입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복지부의 국정과제와 실제 예산 간 괴리가 크며, 복지 확대의 실천 의지가 취약하다”며 “기초연금·장애연금·보육·요양 등 사회서비스 인프라 예산은 정체 또는 감액된 반면, 보건산업 연구개발(R&D와)과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 예산이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산업화를 명분으로 한 복지서비스 시장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며 “노인일자리 예산의 특별회계 이전 역시 지방자치 강화를 위한 조치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재정부담 회피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이어 “결국 이번 예산안은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국민 삶의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미완의 복지예산’”이라고 총평했다.

분야별 예산분석

기초보장 분야 예산 평가를 맡은 김윤민 국립창원대 교수는 “정부는 사회안전망 강화를 내세웠지만, 예산의 양적 확대가 실질적 보장성 강화로 이어지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간주부양비 폐지’와 ‘30세 미만 미혼 자녀의 생계급여 분리 지급’에 대한 모의 적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생계급여·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미반영, 기준중위소득의 낮은 현실화 수준, 건강생활유지비 축소 등은 제도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의료급여 정률제 전환에 대해 “빈곤층의 건강권은 물론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치”라며 “정부의 구체적이고 책임 있는 답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후재난으로 주거취약계층이 직접적인 위협에 놓여 있음에도 지원 예산은 여전히 미흡하다”며 “정부가 말하는 ‘함께 행복’의 실현을 위해선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 의료급여 개악 중단, 주거취약계층 지원 강화가 필수”라고 주장했다.

 

보건의료 분야를 평가한 김진환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교수는 “건강보험 예산은 1.3% 증가에 그친 반면, 보건산업 R&D 예산은 32.8% 급증했다”며 “정부의 재정 방향이 ‘필수의료 확충’이 아닌 ‘산업 중심 성장 프레임’에 맞춰져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공공의료 예산 증액분이 실제로는 대형병원의 AI 인프라 구축에 집중돼 있다”며 “지역의료의 위기는 기술이 아닌 인력 부족에서 비롯된 문제인데, 정부의 정책 방향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건강보험의 국고 지원이 여전히 법정 기준에 미달하고, 재난적 의료비 지원 예산이 28.5% 줄었으며 차상위계층 지원도 사실상 감액됐다”며 “의료비 안전망 기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건강보험 재정 100조원이 국회 심사체계 밖에서 이해당사자 협의만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라며 “공공의료·건강보험·보건산업의 관계를 재정 방향성 차원에서 다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돌봄 분야를 맡은 김형용 동국대 교수는 “국정과제 123개 중 ‘돌봄’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 내용은 AI·스마트 기술 중심의 산업화 전략에 가깝다”며 “돌봄을 복지정책이 아닌 성장산업의 한 축으로 보는 관점이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돌봄통합지원법 시행이 내년 3월로 다가왔지만, 정작 돌봄권 강화를 위한 재정 확보와 정책 설계는 미흡하다”며 “노인·아동·장애인 돌봄 예산 모두 공공 인프라 확충보다는 단기성·시장 의존형 지원에 치우쳐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노인돌봄은 단순 자연증가에 그치고, 아동돌봄은 한시적 특별회계에 의존해 재정 안정성이 약하다”며 “사회서비스원 예산도 인프라 확충이 아닌 ‘서비스 고도화’ 중심으로 짜여 설립 취지와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복지예산의 양적 확대만으로는 국민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없다”는 뜻을 같이했다. 산업화 중심의 예산 구조에서 벗어나, 복지의 기본 원리인 공공성·보편성·형평성을 중심으로 한 재정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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