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談談한 만남] 타일로 K-공간 브랜드를 세우는 회사…불의 이름으로 공간을 빚다, 한주세라믹스

-불에서 시작된 철학, K-타일의 정체성을 세우다
-사람과 공간을 바꾸는 타일, 한주의 디자인 언어
-기술, 교육, 그리고 내일…한주세라믹스가 만드는 미래

전라북도 순창군에 위치한 ㈜한주세라믹스 본사(공장) 전경.

 

1983년 타일생산을 시작해 40여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 온 대보세라믹스는 올해 8월 한주세라믹스라는 새 이름을 달았다. 2세 경영인인 박효진 대표는 새로운 50년을 위한 도약을 위한 것으로 ‘나라 한(韓)’과 ‘기둥 주(柱)’를 합친 사명에 “한국 타일의 기준이자 사람들이 살아가는 주거 공간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겠다는 뜻을 담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여성기업 인증을 받은 회사지만 그는 “여성 CEO라는 수식어보다 공간과 사람을 같이 이야기하는 회사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불의 원에서 피어난 빛, 불의 이름으로 빚는 공간, 한주의 이름으로 한주는 ‘불(火)’에서 시작된 창조의 에너지를 담은 상징이다. 불꽃이 피어오르는 순간의 형상은 대보세라믹스가 42년간 지켜온 ‘열정, 창조, 신뢰, 업의 정신(소성)’의 계승을 의미하며 위로 향하는 불꽃 조각은 끝없는 도전과 변화의 정신, 아래의 둥근 곡선은 불을 다스려 완전한 형태로 빚어내는 기술력을 담고 있다. 불을 담은 바(bar)는 한 장, 한 장의 타일을 위해 다져온 기초이자, 타일이 이루는 공간을 표현한다. 시간을 견디는 품질, 그리고 시대를 담는 디자인, 한주는 한국 타일(K-Tile)의 이름으로 그 중심에서 세계를 향해 빛난다.

 

◆불과 공간을 하나의 기호로

 

새 사명을 상징하는 엠블럼의 중심에는 불꽃이 그려져 있다. 섭씨 1100~1200도의 고온에서 타일을 구워내는 가마는 한주의 출발점이자 운명이다. 박 대표는 “우리는 결국 불을 다루는 업”이라고 정의하면서 불꽃 아래 놓인 평평한 바 형태는 “가마 위에 올려진 타일이자 타일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이라는 의미임을 설명했다. 불로 구워진 한 장 한 장의 타일이 모여 사람의 삶을 담는 바닥과 벽이 된다는 서사를 작은 기호 하나에 압축해 걸어둔 셈이다. 한주세라믹스의 슬로건은 ‘공간과 사람을 생각하는 타일 회사’다.

 

이 회사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업은 책이다. 회사는 7권의 T.I.L.E 매거진을 내면서 타일 제조사로서는 보기 드문 장기 프로젝트를 이어왔다. 1권은 타일의 역사와 기본 개념, 2~5권은 트렌드·인터뷰·라이프스타일·전시를 엮어 공간 철학을 담았다. 흥미로운 건 이 매거진 어디에도 사명이나 제품명이 전면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 대표는 “처음부터 회사 홍보물처럼 보이면 사람들은 곧장 광고로 읽어버린다”며 “우리가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행복을 주는 공간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회사는 생산 공정 등 다양한 주제를 정리한 실무서 ‘타일왕’을 냈다.

 

특히 ‘타일왕 생산편’은 공장 안에서만 돌던 노하우를 문자로 옮긴 기록으로 도자기질 타일의 표준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 대해 박 대표는 “우리 회사의 매뉴얼이면서 동시에 한국 타일 기술을 정리해 둔 참고서”라면서 “오랜 시간 동안 기술자들과 디자이너들이 함께 쌓아 온 시간이 빛을 발할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벽·바닥타일을 제조하기 위한 소지분말(Powder) 이송 과정. 스프레이 드라이어에서 건조된 타일의 원재료가 되는 소지분말이 컨베이어벨트로 전달되고 있다.

 

◆타일은 사람과 공간의 언어

 

박 대표가 요즘 가장 자주 꺼내는 단어는 ‘타일’보다 ‘화장실’이다. 그는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하루를 시작하고 끝낼 때 반드시 들르는 곳이자 타일이 건축자재로서 가장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화장실”이라며 그 공간이 오랫동안 ‘청소만 잘 되면 되는 곳’으로 취급돼 온 현실을 지적했다.

 

공간의 특성상 변기와 세면대, 거울과 수납장은 필수지만 쉽게 모양을 바꿀 수 없는 반면, 벽과 바닥의 색과 패턴, 조명은 정서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변수로서 사용자들이 선택을 다르게 할 수 있다.

 

그는 “호텔 화장실에서는 인테리어에 감탄하면서 정작 자기 집 화장실은 ‘깨끗하면 됐다’ 수준에서 멈춰 있는 경우가 많다”며 “그 몇 분 동안 눈에 들어오는 색과 패턴이 기분을 좋게 해줄 수도 있고 마음을 조용히 정리해 줄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그가 끌어온 키워드가 ‘현대적 풍수’다. 집터를 고르던 전통적인 풍수를 그대로 가져오자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 에너지를 활용한다’라는 본질을 색과 패턴, 질감으로 재해석하자는 제안이다.

 

박 대표는 “단순히 좋은 터를 고르기 어려운 시대라면 이미 살고 있는 집·학교·사무실·화장실 곳곳에 긍정의 장치를 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주세라믹스 디자인실은 화장실이 속한 공간의 공간다움이 어떤 것인지 지속적으로 연구함은 물론, 색채 심리 연구를 참고해 타일의 색과 패턴을 설계한다.

 

초록·푸른 계열이 주는 안정감과 회복, 노랑·오렌지가 주는 활력, 과도한 붉은색이 유발할 수 있는 불안 등을 검토하면서 그는 “우리가 색과 패턴을 고를 때 ‘예쁘다’에서 끝나지 않고 이 공간을 쓰는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선물하고 싶은지까지 같이 묻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철학은 어린이·청소년 공간에서 가장 먼저 실현됐다. 한주세라믹스의 ‘꿈틀 타일’은 “아이들의 꿈이 꿈틀거리는 공간”을 지향한다. 높은 천장, 차가운 조명, 단조로운 회색 벽 때문에 화장실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회사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화장실을 바라보며 공룡·동물 캐릭터를 단순한 장식이 아닌 정서적 안정과 호기심을 돕는 장치로 사용한다.

 

발달 단계별 선호 색채와 자극 수준을 조사해 색과 패턴을 조정하면서 박 대표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면 타일의 색과 모양이 거의 전부이기 때문에 그 시야를 조금만 부드럽게 만들어도 화장실이 ‘빨리 나가고 싶은 곳’에서 ‘조금은 안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아이들이 캐릭터를 찾아 손으로 만져 보고 색과 모양에 대해 이야기하며 화장실을 ‘덜 무서운 곳’으로 받아들이는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벽·바닥타일의 성형과정. 타일의 원재료인 소지분말(Powder)이 2890톤 프레스에 의해 정해진 규격으로 압축성형돼 나오고 있다.

 

◆‘K-공간’을 이루는 ‘K-타일’…정체성 잇는다

 

‘K-공간’과 ‘K-타일’이라는 표현은 한주세라믹스가 미래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또 다른 언어다. 외국인들이 경복궁과 박물관, 한옥 호텔을 찾았다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백색 타일과 금속 설비를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 대표는 “겉에서 본 풍경과 화장실 안 풍경이 너무 달라 공간 경험이 중간에서 끊긴다”며 “K-공간이라면 마지막 화장실까지 정체성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 디자인실은 궁궐의 담장, 달항아리의 곡선, 단청 문양, 길상 문양, 한글 등을 모티프로 현대적인 패턴과 색채를 개발하고 있다. 그는 “공항·역사·박물관·학교·병원까지 각 공간이 자기다움을 끝까지 밀어붙일 때, 그 나라가 브랜드가 된다”며 “그 호흡을 가장 큰 면적에서 책임지는 것이 결국 타일”이라고 강조했다.

 

해외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복잡한 듯 보이지만 의외로 심플하다. 타일은 무겁고 컨테이너에 실리는 수량은 제한적이며 운임은 비싸다. 대리석 무늬나 일반 스톤 패턴은 이미 소량∙고가로 생산하는 유럽부터 대량·저가로 양산 중인 중국·베트남·인도 등이 있다. 박 대표는 “그들과 같은 게임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 타일이 해외에서 선택된다면 저렴해서가 아니라 한국적인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서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해외 조달시장과 재건 사업을 주시하며 K-타일을 수출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수출을 한다는 것은 한 나라의 공간 철학을 같이 보내는 셈이기 때문에 K-공간을 경험하게 하는 타일이라는 포지션을 분명히 해 두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벽타일의 시유공정. 시유기를 통해 비중이 높은 유약을 낙하방식으로 도포하고 있다.

 

◆타일을 넘어 문화를 만들다

 

내부로 돌아오면 한주세라믹스의 전략은 생산과 교육으로 이어진다. 회사는 2022년 괴산 공장을 본사인 전북 순창공장으로 생산 일원화했다. 벽·바닥 생산을 나눠야 효율적이라는 통념을 뒤집고 하나의 공장에서 라인을 유연하게 전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직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가스 가격이 급등했고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벽·바닥타일을 제조하기 위해 필요한 가마(Kiln)의 모습. 벽타일(도기질타일)은 2차에 걸친 소성과정이 필요한 타일로, 1차 초벌구이(Biscuit)타일을 거쳐 2차 완제품 타일로 완성된다. 바닥타일(자기질타일)은 1차 소성만으로 완제품 타일이 완성된다. (벽타일 소성온도 - 1차 : 1120~1130℃·2차 : 1030~1070℃, 바닥타일 소성온도 - 1차 : 1160-1190℃)

 

벽·바닥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로스를 줄이고 품질을 안정화하는 일은 기술자들의 몫이다. 박 대표는 “공장을 하나로 줄였지만 질문은 더 넓어졌다”며 “이 구조를 안정적으로 돌리는 내공이 지금 우리만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림타일 제조 공정에서 타일표면에 디자인이 인쇄된 후 가마(Kiln)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인쇄 부적합품을 선별하고 있다.

 

그는 타일 생산 그 이상을 꾀한다. 현재 시공자들은 국가기술자격을 통해 배출되지만 타일 자체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박 대표는 “타일을 붙이는 기술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타일 자체가 어떤 물성을 가진 제품인지 이해하면 하자율이 줄고 공간의 질도 올라간다”며 “타일 생산을 넘어 업계 전체의 눈높이를 함께 올리는 것이 결국 우리 제품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1983년 타일 생산을 시작한 ㈜대보세라믹스는 40여 년의 혁신과 성장을 바탕으로 올해 8월 ㈜한주세라믹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박효진 대표는 변화의 의미를 넘어, 회사의 다음 50년을 열어 갈 담대한 비전과 포부를 제시하고 있다.

 

10년 뒤 한주세라믹스의 모습을 묻자 그는 거창한 숫자 대신 인식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10년 뒤에는 ‘화장실은 가장 나 다운 공간이다’, ‘K-공간에는 K-타일이어야 한다’, ‘색과 패턴을 고려한 아이들 화장실도 교육 환경의 일부다’ 등의 말이 상식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며 “그때 사람들 머릿속, 인식의 변화 중심에 한주세라믹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면 그게 우리가 원하는 미래에 가까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 침체와 건설 부진 속에서도 묵묵히 가마 불을 지키는 직원들을 떠올리며 그는 “10년 뒤의 우리는 오늘을 잘 버텼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게 아니겠나. ‘쌓아온 노력과 시간을 믿는다’며 지금을 함께 잘 버티고 있는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는 말로 만남을 마무리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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