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탈팡 지각변동] 개인정보 유출 위험에…개인 소비자들 어떤 선택하나

 

서울 서대문구의 한 오피스텔. 출근 준비를 하던 김모(37) 씨는 전날 밤 휴대전화 속 쿠팡 앱은 지우며 “일단 한 번 멈춰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쿠팡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불거지자 그동안 별 의심 없이 써 온 서비스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 씨는 5년 넘게 쿠팡을 주된 온라인 쇼핑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생필품, 아이 옷, 사무실에서 쓸 간식과 소모품까지 대부분을 ‘로켓배송’으로 해결했다. 빠른 배송과 익숙한 화면 구성 덕에 별다른 비교 과정 없이 결제까지 이어지는 날이 많았다. 그는 “편하다는 이유로 거의 자동처럼 쓰고 있었다”고 했다.

 

논란 이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자신이 남겨 온 각종 정보였다. 결제 카드, 집과 회사 주소, 자주 받는 시간대, 구매 이력까지 모두 한 서비스 안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비밀번호를 바꾸고, 등록된 카드 몇 개를 삭제한 뒤, 결국 앱까지 지웠다. “다시 쓸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한 발 물러서서 보자는 생각이 크다”고 말했다.

 

◆대안은 아직…다시 동네마트 가야 하나

 

쿠팡을 지운 뒤 김 씨의 휴대전화엔 다른 쇼핑 앱들이 들어왔다. 네이버 플러스스토어, 마켓컬리, SSG닷컴 등을 번갈아 설치해 사용해봤다. 배송 속도와 가격, 상품 구성이 제각각이어서 어느 한 곳으로 완전히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배송이 하루만 늦어져도 체감 차이가 꽤 크다”며 “그래도 개인정보가 한 군데에 과도하게 몰리지 않도록 나누는 정도의 조정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평구에 사는 주부 이모(42) 씨도 최근 ‘온라인 장보기 방식 점검’을 스스로에게 과제로 걸어놨다.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는 그는 그동안 쿠팡과 일부 마트 앱을 섞어 쓰며 대다수 생필품을 온라인으로 해결해왔다. 논란 이후 이 씨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아이들과 관련된 정보였다. “아이 취향, 학교 근처 배송지, 자주 받는 시간대 같은 것들이 다 연결돼 있겠다 싶으니 한 번쯤은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당분간 무거운 물건만 최소한으로 온라인 주문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동네 마트와 기존 공동구매 채널로 돌리는 방식을 택했다. 결제카드를 특정 플랫폼에만 몰지 않기 위해 카드사 앱에서 사용 내역과 등록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그는 “예전보다 손은 조금 더 가지만, 정보를 어떻게 남겨두고 있는지 점검하는 계기는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인해 경찰이 2차 압수수색을 벌인 10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 쿠팡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시스

 

◆개인 관련 정보 얼마나 남기나

 

성수동에 사는 프리랜서 박모(29) 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배송 속도’ 대신 ‘정보 최소화’를 우선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그 역시 한동안 쿠팡을 비롯한 여러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해왔지만 회원가입 단계에서 요구되는 정보 항목이 많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한다.

 

박 씨는 최근 로그인 없이도 구매가 가능한 사이트 혹은 소셜 로그인 대신 단순 이메일 로그인만으로도 이용 가능한 플랫폼을 먼저 찾고 있다. 앱 설치를 최소화하고 가능하면 웹 브라우저를 통해 주문하는 방식도 늘렸다. “특별히 어느 회사를 찍어서 불신한다기보다는 이번 기회에 제가 남기는 정보의 양을 전반적으로 줄여보자는 쪽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각자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쿠팡 논란 이후 일부 소비자들은 ‘어디가 더 싸고 빠른가’라는 단일 기준에서 벗어나 ‘어디에 어떤 정보가 얼마나 남고 어떻게 관리되는가’를 동시에 고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편해도 신뢰가 있어야 계속 쓴다

 

IT·유통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전자상거래 플랫폼 전반의 신뢰 구조를 다시 점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쿠팡을 비롯한 주요 플랫폼들이 어떤 개선책을 내놓고, 소비자들이 어떤 기준으로 다시 선택을 이어갈지에 따라 향후 국내 전자상거래 환경의 신뢰 수준도 달라질 전망이다.

 

정보보안 관련 한 전문가는 “온라인 쇼핑은 이미 생활 인프라에 가까운 서비스가 됐기 때문에, 단순한 불매나 감정적 반응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각 플랫폼의 개인정보 관리 방식과 사고 대응 체계가 소비자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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