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미국 테네시주에 11조원 규모의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한다. 이를 위해 설립하는 현지 합작법인(JV)에는 미국 정부·기업도 함께 참여한다.
고려아연은 15일 이사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미국 제련소 투자안을 의결했다. 회사는 이사회 종료 후 공시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확대와 미국 내 비철금속 및 전략광물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북미 시장의 중장기 성장성을 선점해 안정적·지속적인 수익 창출 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추가 생산 거점 마련을 위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는 고려아연의 미국 내 종속회사인 ‘크루서블 메탈즈’를 통해 진행될 예정이다. 예상 투자액은 총 10조9500억원(약 74억3200만달러) 규모다.
구체적으로 고려아연과 미국 정부 및 미국 내 전략 투자자가 출자한 합작법인인 ‘크루서블 JV’를 통해 약 2조8600억원(약 19억4000만달러)를 조달하며, 고려아연은 약 8600억원(약 5억8500만달러)을 직접 투자한다. 나머지 소요 자금은 미국 정부의 정책금융 지원 및 보조금 프로그램, 재무 투자자 대출 등을 더해 충당한다.
고려아연은 크루서블 메탈즈가 미국 제련소 설립을 추진할 수 있도록 미국의 정책금융 지원 대출 및 재무 투자자 대출 규모가 최대 6조9210억원(약 46억9800만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칩스법’에 따라 미국 상무부도 최대 약 3000억원(약 2억1000만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칩스법은 미국 정부가 반도체와 과학 산업에 투자해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중국 등 우려 국가로의 확장을 제한하기 위한 법이다.
고려아연이 지을 복합 비철금속 제련소는 아연, 연, 구리 등 주요 비철금속과 금, 은 등 귀금속을 비롯해 안티모니, 게르마늄, 갈륨 등 핵심광물 1종을 포함해 총 13종의 금속과 반도체용 황산도 함께 생산할 예정이다.
제련소가 들어설 테네시주는 제련에 필요한 용수·전력 등을 쉽게 조달할 수 있는 지역이다. 고려아연은 “미국 내 60여곳을 후보지로 놓고 검토한 끝에 낙점한 곳”이라며 “테네시주에 있는 기존 니르스타(Nyrstar) 제련소 부지를 인수한 뒤 이를 활용해 기반 시설을 재구축하고, 첨단 공정 기술을 적용해 제련소를 건설한다”고 설명했다.
새 제련소는 2027∼2029년 3년에 걸쳐 완공될 예정이며 단계적으로 상업 가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연간 목표 생산량은 아연 30만톤, 연(납) 20만톤, 동 3500톤, 희소금속 5100톤 등이다.
아울러 고려아연은 이날 타법인 증권 취득 자금 약 2조8510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주당 129만133원에 신주 220만9716주(보통주)를 발행하는 내용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제3자배정 대상자는 크루서블 JV이다. 고려아연은 또 크루서블에 약 1323억원을 출자한다고 공시했다. 출자 후 지분율은 10%가 된다.
고려아연과 손을 잡은 미국은 중국이 지난 10월 희토류 등 전략광물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하다 전략광물 현지 생산을 위한 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고려아연에 ‘가능한 한 빨리, 많은 물량’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의 경영권 분쟁에도 큰 변수가 생겼다.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에 미국 정부가 직접 투자로 참여하면서 최윤범 회장 등 고려아연의 현 경영진 측이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고려아연이 경제 안보에 중요한 전략광물을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점이 강조되면서 경영권 경쟁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영풍·MBK보다 최 회장 쪽에 쏠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