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공화국’ 전세의 월세화 60% 시대

서울 용산구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단지 모습. 뉴시스

 

올해 한국 주택 임대차 시장이 구조적 변곡점에 들어섰다. 전국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어섰다. 전세가 한국 주거의 ‘표준 계약’으로 기능해온 지 불과 몇 년 만에, 시장의 중심축이 월세로 급격히 이동한 것이다. 고금리 장기화와 전세 사기 여파, 주택 공급 구조 변화가 맞물리며 ‘전세 중심 국가’였던 한국의 주거 지형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전국 신규 전·월세 거래 중 월세(보증부 월세·반전세 포함) 비중은 60%를 넘어섰다. 2021년 40%대 초반에 머물던 월세 비중이 4년 만에 20%포인트 이상 뛰어오르며, 전세 중심이던 한국 특유의 임대차 관행이 월세 중심 구조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의 경우 아파트 월세 지수 상승률이 연 3%대 중후반을 기록하고, 일부 구에선 원룸·다세대 평균 월세가 보증금 1000만원에 월 70만원 수준까지 오른 것으로 집계된다. 임대차 시장의 기준선이 전·월세 구분에서 ‘어느 수준의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지’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서울과 수도권의 월세 부담 증가는 각종 지표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한국부동산원 집계에 따르면 올해 1~11월 서울 아파트 월세는 3.29% 올라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연간 상승률 3%대를 기록했다. 연립·다세대 주택의 월세 가격지수 역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10월 기준 서울 연립·다세대 평균 월세는 63만6000원, 이 가운데 동남권 평균 월세는 90만1000원, 도심권은 80만4000원을 각각 기록했다. 비 아파트 월세 가격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서민·청년층의 체감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국 단위로 봐도 ‘전세의 월세화’ 흐름은 뚜렷하다. 국토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1~2월 전국 전·월세 신규 거래 중 월세 비중은 61.4%로, 같은 기간 수도권은 60.2%, 지방은 63.5%를 나타냈다. 아파트만 떼어보면 월세 비중이 44.2% 수준이지만, 연립·다세대·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월세 비중은 76.3%에 달해 사실상 월세가 표준 계약으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특히 사회초년생과 1~2인 가구가 밀집한 수도권 비아파트 시장에서는 “전세를 선택하기가 더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현장에서 나온다.

 

배경으로는 고금리와 전세 사기 후유증, 공급 구조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준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강화로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보증금을 받아 운용하는 것보다 월세로 매달 현금을 확보하는 편이 유리해졌다. 세입자들 역시 수억 원대 전세금을 한 번에 마련하기보다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었다. 여기에 깡통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잇따르면서 “보증금이 클수록 위험이 커진다”는 인식이 확산돼 전세를 기피하는 정서가 강해졌다.

 

공급 측면에서도 월세화를 떠받치는 구조가 뚜렷하다. 최근 몇 년간 수도권에서 공급된 소형 아파트·오피스텔 상당수는 애초부터 ‘월세 수익’을 목표로 기획·분양된 상품이다. 임대사업자·법인·다주택자가 월세 수익률을 기준으로 매입에 나서면서 전세 물량은 줄고, 월세 물량과 가격은 함께 올라가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아파트 인허가·착공 물량이 감소하면서 향후 1~2년 뒤 공급 공백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환의 부담이 고스란히 가계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가 일정 부분 자산 축적의 중간 단계로 작동해 왔다면, 월세는 소득이 곧바로 지출로 빠져나가는 구조다. 같은 주택에 거주하더라도 매달 수십만 원의 현금이 꾸준히 빠져나가면 가처분소득이 줄고, 소비와 저축 여력은 동시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 월세 상승 속도가 임금 상승을 앞지르는 상황에서는 청년·무주택 계층일수록 주거비가 ‘보이지 않는 추가 세금’처럼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부동산 정책 전문가는 “전세가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위험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계층부터 월세로 밀려나는 현상이 뚜렷하다”며 “월세 사회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면 공공임대 확대, 임차인 보호 장치 보강, 주거비 세제 지원 등을 통해 부담을 개인에게만 떠넘기지 않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월세 비중 60%라는 숫자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주거 비용과 위험을 누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신호라는 평가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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