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노화 아이콘’ 정희원 저속노화연구소 대표(전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현 서울시 건강총괄관)가 반전의 사생활 논란으로 ‘신뢰의 얼굴’에서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정 대표는 저속노화 트렌드의 상징으로 불리며 다방면에서 끊임없이 활동했다. 다만 이번 논란으로 건강·라이프스타일, 식품 업계를 아우르던 영향력도 빠르게 흔들리는 중이다. 식품업계도 잇따라 ‘고속 거리두기’에 나서는 분위기다.
정 대표는 국내에 천천히 노화되는 것의 중요성을 아우르는 저속노화 개념을 대중화한 인물이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재직 시절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출연을 계기로 저속노화 식습관과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른바 ‘도파민 없는 식습관’을 강조해온 그는 이후 식품업계와 활발한 협업을 이어갔다. 아산병원 사직 후에는 본격적인 건강 전도사 행보에 나섰다. 이와 함께 다수 식품 브랜드에 정 전 총괄관의 이름과 얼굴이 활용됐다.
협업 제품 자체의 경쟁력은 시장에서 일정 부분 검증됐다. 정 전 총괄관과 함께 개발한 매일유업 ‘매일두유 렌틸콩’은 출시 1주 만에 초도 물량이 완판됐고, CJ제일제당 ‘햇반 라이스플랜’은 누적 판매량 1000만 개를 돌파하며 흥행 성과를 냈다. 국내 주요 식품 기업과 전문가가 협업한 만큼 제품력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
◆“‘건강한 삶’ 강조하던 전문가 사생활의 반전”
그러나 최근 불거진 사생활 논란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정 총괄관은 지난 17일 ‘7월부터 스토킹을 당했다’며 아산병원 위촉연구원으로 일하던 30대 여성을 공갈미수 및 주거침입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해당 여성은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맞고소에 나섰다. 양측이 주고받은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정 총괄관은 사생활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신뢰의 상징이었던 정 총괄관의 얼굴은 이제 브랜드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식품업계는 빠르게 손절에 나서는 분위기다. 식품 산업 특성상 브랜드 이미지와 신뢰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다보니 모델 리스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논란의 사생활, 브랜드 리스크 우려→ ‘고속 손절’
논란이 확산되자 식품업계는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CJ제일제당은 정 전 총괄관과 협업해 출시한 ‘햇반 라이스플랜’의 제품 포장재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제품은 정 전 총괄관의 레시피를 활용해 출시된 바 있다. 포장지에 그의 얼굴과 이름이 함께 담겨 있었다. CJ제일제당은 논란이 불거진 지난 22일을 전후로 관련 이미지 삭제 조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매일유업 역시 정 총괄관과 ‘매일두유 렌틸콩’을 개발한 바 있다. 이 제품은 설탕을 넣지 않고 저속노화 식단의 핵심 곡물이자 정 총괄관이 선호하는 렌틸콩을 원료로 사용했다. 매일유업은 애초에 그의 얼굴이나 이름을 제품에 활용하지 않았다. 다만 홍보물에서 적용된 정희원 총괄관의 모습은 모두 내렸다.
앞서 세븐일레븐 역시 정 총괄관과 협업해 ‘저속노화 간편식 도시락’을 출시해 호응을 얻었다. 샐러디도 지난 7월 두 달간 협업 메뉴를 선보인 바 있다. 세븐일레븐 측은 추가 협업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샐러디는 한정 운영에 나선 만큼 현재는 운영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좋은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전문가와 협업을 진행했을 것”이라며 “제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부정적인 이슈로 브랜드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만큼 정 총괄관의 사진과 이름을 내리는 것은 불가피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통 현장서도 ‘정희원 밀어내기’… 재고 소진 속도
이번 사태로 ‘득템’을 했다는 의외의 반응도 있다. 정희원 총괄관의 얼굴이나 이름이 새겨진 제품을 할인 판매하는 편의점, 마트 등이 적지 않아서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재고 소진을 위한 정희원 총괄관의 얼굴이나 이름이 부착된 일부 제품을 할인 판매하는 곳을 찾아보기 쉽다. ‘2개 이상 구매 시 50% 할인’을 적용하는 식이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A씨는 “평소에 비싸서 자취생의 장바구니에서 뺐던 ‘정희원 박사의 레시피를 활용한 렌틸콩 현미밥’을 처음 구입해봤다”며 “동네 마트에서 3500원이나 할인해주더라. 건강한 식단을 먹어보게 됐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 정 총괄관과 식품업계가 협업한 제품들은 ‘저속노화 프리미엄’ 포지셔닝으로 기존 제품 대비 높은 편에 속했다.
한편, 정 전 총괄관은 전날 서울시에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내부 절차를 거쳐 사표를 수리할 방침이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