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입에도 환율 연평균 1420원 ‘역대 최고’…1400원대 뉴노멀 열리나

외환당국 고강도 구두개입의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하락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26일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되어 있다. 뉴시스

 

#미국에 두 딸과 아내를 둔 기러기 가장 50대 A씨는 요즘 매일 밤 계산기를 두드리며 고통받고 있다.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면서 가족에게 보내야 할 돈이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월급의 70~80%를 보냈지만, 지금은 월급 전액을 보내도 모자라다. A씨는 “‘조금만 버티면 내려가겠지’라는 희망이 사라졌다”며 “아내와 아이들에게 돌아오라고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외환 거래 마감을 이틀 앞두고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보다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미 역대급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연평균 환율이 1420원대에 고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8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26일 원·달러 환율 주간거래 종가는 1440.3원으로 집계됐다. 환율은 지난주 초 1480원대까지 치솟아 연중고점에 근접했지만, 24일 외환당국이 강도 높은 구두 개입과 각종 수급 대책을 내놓으면서 30원 넘게 급락했다. 3년 1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이다. 26일에는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 계획이 전해지며 장중 한때 1420원대까지 내려갔다. 최근 이틀간 환율 변동 폭(고가-저가)은 55.4원에 달했다. 이 같은 급락으로 오는 30일 결정되는 올해 연말 환율 종가는 지난해(1472.5원)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올해는 연중 내내 고환율이 이어졌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 올해 평균 환율은 1421.9원이다. 외환위기였던 1998년(1394.9원)보다도 높아 역대 최고 수준이다. 분기 별로 보면 4분기 평균 환율은 1452.6원으로, 1998년 1분기(1596.9원) 이후 최고였던 올해 1분기 평균(1452.9원)과 거의 같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적정 원·달러 환율을 1330원선(2024년 기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12개 투자은행의 향후 3개월 원·달러 환율 전망치는 평균 1440원으로 집계됐다. 스탠다드차타드와 노무라가 가장 높은 1460원을, HSBC가 1400원으로 가장 낮은 전망치를 내놨다. 6개월 전망치는 평균 1426원이다. 지난 26일까지 주간거래 종가 기준 올해 평균 환율(1421.9원)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최고치로는 바클리 캐피탈·웰스파고·스탠다드차타드가 1450원을, 최저치로는 JP모건·소시에테제네랄이 1400원을 각각 제시했다.

 

9개월 및 12개월 전망치는 평균 1424원으로 동일했다. 향후 12개월 전망에서는 대체로 1400원대 초중반에 머물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바클리 캐피탈이 가장 높은 1490원을 제시했으나, ‘1500원 돌파’에는 다소 거리를 두는 분위기로 보인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연평균 1420원대 환율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 대비 과도하다”며 “고환율이 고착될 경우 원화 약세 심리가 굳어져 투자 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환율 안정을 위해 해외 주식을 팔고 국내로 돌아오는 투자자에게 비과세 혜택을 주는 ‘국내시장 복귀계좌(RIA)’의 투자 대상을 국내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형 상장지수펀드(ETF), 원화 현금 보유까지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세제 혜택만 노리고 자금 돌려막기로 해외주식에 다시 투자하는 ‘체리피킹’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도 고심 중이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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