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만전자’ 시절 삼성전자에 진입해 오랜 시간 마이너스 수익률을 견뎌온 30대 직장인 A씨는 올해 삼성전자가 10만원에 11만원을 넘어서자 큰 수익을 거뒀다. A씨는 “지루한 박스피를 견딘 보상을 드디어 받았다”며 “수익금의 일부로 대출금을 상환할 예정”이라고 웃어 보였다.
올해 국내 주식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고 역사적인 순간들로 가득 찼다. 연초의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고질적인 문제였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원년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고 있다.
◆코스피 ‘4000시대’ 개막
올해 최고의 뉴스는 단연 코스피 지수의 사상 첫 4000선 돌파다. 지난 10월 27일 코스피는 역사상 처음으로 4000 시대를 열었다. 1980년 지수 산정 이후 45년 만의 대기록이자, 2021년 3000선 돌파 이후 약 4년 만에 거둔 결실이다. 반도체 업황의 부활과 정부의 강력한 증시 부양책이 맞물리며 한국 증시는 주요 20개국 중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및 세제 개편
수년간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작용했던 금투세가 지난해 말 법안 통과를 거쳐 올해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이와 함께 정부는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상속세 개편(최고세율 인하 및 자녀 공제 확대)을 단행하며 자본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을 유도했다. 세제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이탈했던 개인 투자자들이 국장으로 복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상법 개정안 통과
오랜 논란 끝에 상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뿐만 아니라 전체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는 지배주주 중심의 의사결정으로 소액 주주들이 피해를 보던 관행에 경종을 울렸으며,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자 ‘10만전자’·SK하이닉스 ‘60만닉스’ 등극
국내 증시를 이끄는 반도체 양강의 약진이 돋보였다.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4세대 및 5세대 제품의 공급 안정화와 파운드리 수율 개선에 성공하며 마침내 주가 10만원선을 돌파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인공지능(AI) 서버 수요 폭증에 힘입어 주가 60만원 고지를 밟았다. 특히 반도체가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의 절반 가까이 견인하며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넥스트레이드 출범…거래 인프라 경쟁 시대
지난 3월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 출범으로 한국거래소 독점 체제가 깨지고 무한 경쟁 시대가 열렸다. 거래 시간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대폭 확대되어 투자 편의가 크게 향상됐으며, 이는 기존 거래소의 혁신을 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다만 거래 분산에 따른 가격 일관성 유지와 감시 공백 해결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당국은 거래소 간 연계 감시를 강화하고 이상 거래 탐지 체계를 점검하며 시장 안정화에 주력하고 있다.
◆공매도 전면 재개와 전산 시스템 구축
지난해 6월까지 금지됐던 공매도가 올해 3월 말 부터 전면 재개됐다. 이번 재개는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공매도 중앙 차단 시스템(NSDS)' 구축과 함께 이뤄져 시장의 신뢰를 높였다. 공매도 재개 직후 변동성이 우려되기도 했으나, 유동성 공급과 가격 발견 기능이 정상화되며 시장 성숙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여의도 저승사자’ 주가조작근절대응단 출범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은 ‘여의도 저승사자’라는 별칭에 걸맞은 강력한 성과를 냈다. 1000억원 규모의 대형 주가조작 사건을 적발해 자산가와 금융권 종사자 간의 유착 고리를 끊어냈으며, NH투자증권 임원의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를 포착하는 등 내부자 거래에도 엄정 대응했다.
◆한국투자·미래에셋 ‘1호 IMA’ 상품 출시
정부가 모험자본 공급 활성화를 위해 8년 만에 종합투자계좌(IMA) 시장을 개방했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공동 1호 사업자로 선정되며 증권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모집 5일 만에 1조590억원을 완판했고, 미래에셋증권은 1000억원 규모의 3년 만기 폐쇄형 상품을 출시하며 50억원의 직접 시딩 투자를 단행해 책임 운용에 나섰다.
◆새 금융투자협회장에 황성엽 신영증권 대표 당선
지난 18일 제7대 금융투자협회장 선거에서는 황성엽 신영증권 대표가 당선되며 증권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현직 회장의 연임 도전과 관료 출신 후보의 가세로 치열했던 이번 선거는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마무리됐다. ‘40년 증권맨’ 황 대표의 당선은 실질적인 현장 중심의 개혁을 원하는 회원사들의 의지가 투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AI 투자의 진화
AI 테마가 단순한 반도체 칩 제조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에너지 섹터로 확산됐다. AI 데이터센터 구동을 위한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전력 설비, 원자력(SMR), 재생에너지 관련주들이 ‘제2의 엔비디아’로 불리며 급등했다. 실질적인 수익을 내는 AI 서비스 기업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며 투자 패러다임이 기대감에서 실적으로 전환된 한 해였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