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400원대 후반의 환율은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과 괴리가 큰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대미 투자 연 200억 달러 집행과 관련해서는 “한은이 금고지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2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2026년 시무식’과 이어진 취재진과의 만남 등에서 “해외 IB(투자은행)는 1480원 환율이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며 “대개 1400원 초반 정도로 (전망하는) 보고서가 나오는데, 국내에서만 유튜버들이 원화가 곧 휴지 조각이 된다고들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내국인 기대가 환율 상승을 크게 드라이브하고 있다”며 “얼마를 적정 환율이라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DXY(달러인덱스)와 괴리돼서 올라가는 건 기대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국민연금 역할론도 거듭 언급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거시적 영향을 고려한다면 지금보다 헤지를 더 많이 해야 하고, 해외 투자를 줄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자기들이 외채를 발행하게 해주고 그걸 통해서 외환시장에 주는 영향을 줄이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며 “그렇게 하면 한 20% 헤지가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과의 연간 2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협정에 대해서는 “연간 2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자금이 원화 약세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절대로 (달러가) 기계적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내가 한은을 떠난 뒤라도 금융통화위원들이 안해줄 것이다. 한은이 금고지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는 순대외채권국으로 대외건전성이 양호한 만큼, 최근의 환율 수준만으로 과거 위기 상황과 유사하다고 보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다만 환율 상승이 물가 상승압력을 높이고, 내수기업 등에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해 앞서 언급한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가와 성장 전망에 대해 이 총재는 올해 물가상승률이 2.1%를 기록해 주요국보다 안정된 흐름을 보일 것으로 봤지만, 높은 환율이 지속될 경우 물가 압력이 다시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성장률에 대해선 “성장률이 1.8%로 작년의 1%에 비해 상당히 높아져 잠재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올해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IT 부문을 제외할 경우, 성장률은 1.4%에 그치고 부문 간 회복 격차가 커 체감 경기와는 괴리가 클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통화정책으로 물가상승률을 안정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국제적으로 가격 수준이 높은 품목에 대해서는 유통구조 개선, 수입개방 확대 등 다양한 구조개혁 노력을 통해 물가수준을 낮추려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며 “향후 통화정책은 다양한 경제지표를 자세히 점검하면서 정교하게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