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종로 3가 귀금속 상가 거리는 최근 긴장감에 휩싸였다. 금은방마다 내걸린 전광판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금·은 시세가 붉은 숫자로 번쩍였고, 한 도매상 안에서는 중년 여성과 점주 사이에 금반지 매입 가격을 놓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달러 약세와 지정학적 긴장 고조로 온스당 5500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썼던 국제 금값이 4800달러선으로 급락해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이고 있다. 은값 역시 110달러 고점을 찍고 78달러선까지 내려앉았다. 널뛰는 가격 변동성 속에서 귀금속 랠리는 우리 일상 풍경까지 바꾸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돌잔치 문화다. 3일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국제 금값이 사상 처음으로 5000달러를 돌파한 지난달 26일 기준 국내 순금 한 돈(3.75g)도 100만원을 넘어섰다. 지난 2일 기준으로는 98만원대다. 특히 가장 많이 선물하는 돌반지 가격은 부가가치세 10%와 세공비를 더하면 최소 110만원에 달한다.
조카의 첫돌 선물을 위해 종로 3가의 금은방을 찾은 34세 직장인 A씨는 반지 대신 현금을 선택했다. A씨는 “돌반지 한 돈을 맞추려니 예산을 크게 초과한다”며 “반 돈(1.875g)짜리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라 결국 현금 봉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귀금속 업계에 따르면 과거 돌잔치의 필수품이었던 순금 1돈 반지는 판매량이 급감했다. 대신 현금, 혹은 주식 계좌 개설 등이 대세로 떠올랐다.
58세 주부 B씨는 신문지에 겹겹이 싼 빛바랜 은수저 세트를 내놨다. B씨는 “금값이 올랐다는 뉴스는 봤지만, 은값도 이렇게 오를 줄은 몰랐다”며 “장롱 구석에 모셔만 두었던 시어머니의 은수저와 아이들 어릴 때 받은 미아 방지 목걸이까지 싹 긁어모아 왔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장기근속 포상 제도도 개편되고 있다. 중견 제조기업에 재직 중인 52세 C씨는 지난달 20년 근속 포상으로 관례였던 ‘황금열쇠 5돈’ 대신 현금을 수령했다. 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금값 급등으로 인해 기존 포상 제도를 유지할 경우 예산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늘어났다”며 “노사 협의를 거쳐 포상 품목을 현금이나 복지 포인트, 여행 상품권 등으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는 ‘티끌 모아 태산’ 방식의 소액 금 투자 문화가 자리 잡았다. 23세 대학생 D씨는 SNS에서 유행하는 ‘콩알 금 모으기’ 챌린지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0.5g에서 1g 단위의 초소형 금 조각을 구매해 병에 모으는 방식으로, 비싼 골드바 대신 소액으로 금을 소유하려는 수요가 반영된 현상이다. D씨는 “금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1g 단위로 조금씩 매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휴대폰과 SNS에는 유리병에 팥알 크기의 금을 채운 인증 사진들이 가득했다.
금·은값 상승으로 관련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도금 제품을 순금으로 속이거나, 중량을 미세하게 줄인 제품을 유통하는 사기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는 중국산 30돈짜리 팔찌가 이물질이 섞인 가짜 금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한 금은방 주인은 “요즘은 매입할 때 무조건 잘라보고 확인한다”며 “개인 간 거래 시 보증서 확인이 필수적이다. 또 시세보다 지나치게 저렴한 제품은 위조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