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집 중 한 집은 적자”… 가계 양극화 뚜렷해져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 음식점에 메뉴 안내문이 붙어있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4년 외식 소비자물가지수는 연평균 121.01(2020년=100)로 집계됐다. 4년 사이 약 21% 상승한 수준이다. 뉴시스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 음식점에 메뉴 안내문이 붙어있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4년 외식 소비자물가지수는 연평균 121.01(2020년=100)로 집계됐다. 4년 사이 약 21% 상승한 수준이다. 뉴시스

 

#맞벌이지만 소득 하위권에 속하는 정모(34)씨 부부는 “명절 상여금이 없으면 매달 적자”라고 토로했다. 정씨는 월급은 소폭 올랐지만, 식료품과 공공요금, 대출 이자 부담이 늘면서 추석 명절비용까지 겹쳐 지출이 소득을 넘어섰다고 한숨을 쉬었다. 반면 대기업에 근무하는 박모(52)씨는 연말 상여금으로 소득이 크게 늘었지만 소비는 예년 수준으로 유지하며 남는 돈을 주식과 예금에 넣었다. 

 

지난해 4분기 네 집 중 한 집꼴로 처분가능소득보다 지출이 더 많은 적자살림을 했다. 2019년(26.2%) 이후 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2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과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적자가구 비율은 25.0%로 집계됐다. 2020년 23.3%로 낮아진 뒤 2021~2023년 24%대를 유지했고, 2024년 23.9%로 내려왔으나 다시 상승했다.

 

적자가구 증가는 누적된 고물가와 이자 부담 확대가 배경으로 꼽힌다. 소득은 늘었지만 지출 증가 속도가 더 가팔랐다. 특히 저소득층의 부담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4분기 소득 1분위(하위 20%)의 적자가구 비율은 58.7%로 1년 전보다 1.8%포인트 상승했다. 2분위는 22.4%, 3분위는 20.1%, 4분위는 16.2%로 모두 올랐다. 반면 5분위(상위 20%)는 7.3%로 0.9%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26만9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했지만, 처분가능소득은 106만1000원으로 2.4%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소비지출은 146만4000원으로 5.7% 증가해 평균소비성향이 138.0%에 달했다. 번 돈보다 더 쓰는 구조다. 1분위 가구의 소비지출 비중은 식료품·비주류음료(22.3%), 주거·수도·광열(18.4%), 음식·숙박(13.5%) 순이었다.

 

가계대출 이자 부담도 역대 최대 수준으로 불어났다. 지난해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이자비용은 13만4000원으로 전년보다 11.0% 증가했다. 4분기 기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다.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이자비용은 3만200원으로 처음 3만원을 넘어섰다. 소득이 낮을수록 이자 부담이 소비 여력을 더욱 제약하는 구조다.

 

반면 고소득층은 ‘덜 쓰고 더 남긴’ 것으로 나타났다.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936만1000원으로 5.0% 증가했다. 근로소득이 8.7% 급증한 영향이 컸다. 그러나 소비지출은 511만원으로 4.3% 늘어나는 데 그쳤다. 평균소비성향은 54.6%로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흑자액은 425만원으로 5.9% 늘었다. 2년 연속 400만원대를 기록했다. 늘어난 소득이 소비보다 저축과 투자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고소득층(4~5분위)의 한계소비성향(MPC)은 2020~2021년 0.11에서 2022~2023년 0.07로 하락했다. 추가 소득 중 소비로 연결되는 비율이 더 낮아졌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고소득층의 소비 둔화와 저소득층의 적자 확대가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고소득층은 이미 소비 여력이 충분해 소득이 늘어도 지출을 크게 확대하지 않는 반면, 저소득층은 필수지출 비중이 높아 물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기 때문에 소비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내수 회복 동력도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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