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 잡겠다더니…” 50일 만에 누더기 된 정부의 ‘레버리지 무리수’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로고. 사진=뉴시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로고. 사진=뉴시스

정부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50일 만에 전격적인 제도 보완책을 발표했다. 극심한 자금 쏠림과 증시 변동성 확대로 투자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사실상 상품 거래를 강하게 규제하는 고강도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당초 고환율 대응이라는 정무적·정책적 목표 하에 졸속 도입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금융당국 역시 세밀한 설계 실패에 따른 책임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진입장벽 대폭 강화…‘현금 3천만원’ 있어야 거래 가능

 

16일 오후 금융위원회는 경제부총리 주재 시장상황점검회의(F4 회의) 논의를 거쳐 확정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ETF·ETN)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보완책의 핵심은 개인 투자자의 진입장벽을 극단적으로 높여 시장 과열을 식히는 데 방점이 찍혔다. 먼저 개인 투자자의 기본 예탁금 조건이 대폭 강화된다. 기존 1000만원이었던 기본 예탁금이 3000만원으로 상향 조정되며, 특히 기존과 달리 주식, ETF, 채권 등 대용증권을 배제하고 오직 현금만 예탁금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소액 개인 투자자들의 진입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매매 단위와 교육 요건도 까다로워진다. 최소 매매수량 단위가 기존 1좌에서 20좌로 확대되어 이제 투자자들은 20좌 배수 단위로만 주문을 넣을 수 있으며, 거래 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심화 교육 시간도 기존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늘어난다. 이와 함께 유동성공급자(LP)의 괴리율 관리 의무가 3%에서 2%로 타이트해지는 한편, 신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상장은 당분간 전면 금지되고 자산운용사들의 관련 마케팅 활동 역시 전면 제한된다.

 

 

◆ 증시 뒤흔든 ‘숏 감마’…사이드카 18회·서킷 5회 폭풍

 

이처럼 금융당국이 초강수 규제를 빼 든 것은 해당 상품이 국내 증시 체력을 갉아먹는 주범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기초자산의 하루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는 구조적으로 증시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운용사는 매일 장 마감 전후로 목표 배수를 맞추기 위해 주가가 오르면 사고, 내리면 파는 ‘리밸런싱(자산 재조정)’을 진행한다. 파생상품 시장에서 기초자산 가격 변동에 따라 매매가 집중되며 하방 압력을 가중시키는 이른바 ‘숏 감마’ 현상이다.

 

특히 코스피200 내 비중이 50%를 상회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동반 급락할 때마다 이들 레버리지 ETF의 리밸런싱 매물이 쏟아지며 지수 폭락을 부추겼다. 실제로 올해 코스피에서 발생한 총 37회의 매수·매도 사이드카 중 무려 18회가 지난 5월 27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출시 이후에 발동됐다. 올해 발동된 총 7차례의 서킷브레이커 중 5차례 역시 출시 이후에 집중됐다. 한국 증시 역사상 서킷브레이커 총 발동 횟수가 13회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수치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의 영향력도 확인됐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한국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레버리지 ETF 운용자산의 약 절반은 국내가 아닌 홍콩 등 해외 시장에 상장된 상품이다. 국내외 자금이 동시다발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변동성에 베팅하며 한국 시장의 기초체력을 뒤흔들어 온 셈이다.

 

 

◆ “서학개미 잡겠다더니…” 청와대·금융당국 무리수가 낳은 참사

 

정치권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정부의 성급한 제도 도입이 이번 사태를 자초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5월 27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16종이 일제히 상장됐다. 당시 금융당국은 글로벌 규제 정합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1500원선을 위협하던 고환율 국면에서 미국과 홍콩 등 해외 레버리지 상품으로 빠져나가던 서학개미의 자금을 국내로 돌려놓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실제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1월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나스닥에서 가능한 레버리지나 개별주식 ETF를 왜 우리는 못하게 하느냐고 금융위에 문제를 제기했다며 정책 도입을 직접 압박했음을 시인한 바 있다. 그러나 부작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비판 여론이 들끓자 이재명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보완 대책을 신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 당국 “상장폐지는 불가”…시장 혼란 당분간 지속될 듯

 

일각에서는 시장 왜곡을 막기 위해 해당 상품을 아예 상장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으나 금융당국은 선을 그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상장폐지 시 시장에 더 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변제호 금융위 자본시장국장 역시 브리핑을 통해 상장폐지는 상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유명무실해질 때 적용하는 카드라며, 현재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문제는 수요 과열이 원인이므로 상장폐지 요건을 적용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서둘러 진화에 나섰음에도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과 투자자 불만이 고조되고 있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둘러싼 시장의 잡음은 당분간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노희선 온라인 기자 ahrfus3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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