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가파르게 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 다시 수출 쪽으로 쏠리고 있다. 기업 실적 개선과 대규모 설비투자, 사상 최대 수준의 성과급 지급까지 이어지면서 과거 반도체 호황기보다 내수로 퍼지는 효과가 커질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다만 수출 호조가 IT 업종과 고소득층에 집중된 만큼 실제 소비와 체감경기 개선으로 이어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이다.
26일 국회예산정책처(NABO)의 ‘경제동향&이슈’ 7월호에 따르면 6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70.9% 증가했다. 중동전쟁과 통상정책 변화, 중국 경기 불확실성 등 대외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반도체가 전체 수출 증가세를 이끌었다.
수출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있다.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수출로 발생한 부가가치가 약 748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8%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 1분기에는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2.9%까지 높아져 최근 5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반도체의 영향력이 두드러졌다. 올해 상반기 반도체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액은 1094억달러로 추정됐다. 반도체는 자동차나 선박보다 수출 1단위당 국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효과가 낮지만,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고용량 D램·SSD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수출 규모 자체가 크게 늘면서 경제 기여도가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이번 반도체 호황이 과거와 다른 점은 기업 이익 증가가 투자와 임금으로 빠르게 연결되고 있다는 데 있다.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인공지능(AI) 수요 확대에 대응해 대규모 시설·연구개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설비투자지수는 전년 동기보다 4.4% 늘었고, 증가율은 4월 7.9%, 5월 9.7%로 확대됐다. 반도체 제조용 장비를 비롯한 자본재 수입도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예산정책처는 이 같은 투자 확대와 성과급 지급을 감안하면 이번 수출 호조가 내수에 미치는 효과가 2017~2018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때보다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 증가가 GDP를 직접 끌어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자와 근로소득 증가를 통해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반도체가 잘되면 경제 전체가 좋아진다’는 낙수효과가 곧바로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우선 반도체는 다른 제조업에 비해 국내 후방산업으로 퍼지는 효과가 상대적으로 작다. 반도체 제조장비와 소재·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데다 설계와 제조, 패키징 등을 기업 내부에서 처리하는 수직계열화 구조가 강하기 때문이다.
성과급이 실제 소비로 이어지는 데도 한계가 있다. 성과급 수혜가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대기업 IT 종사자에게 집중돼 있어서다. 올해 1분기 기준 소득 하위 20%의 평균소비성향은 155.3%지만 상위 20%는 57.7%에 그친다. 소득이 높은 계층일수록 추가 소득을 소비보다는 저축이나 자산 구입에 사용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의미다.
주식시장 상승 역시 소비를 크게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코스피와 IT 업종 주가가 크게 올랐지만 높은 변동성과 일부 종목으로의 쏠림 때문에 지수 상승이 개인 투자자의 실제 수익으로 그대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주식 투자로 얻은 이익 역시 소비보다 부동산 등 다른 자산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예산정책처는 결국 이번 반도체 호황의 성과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높이고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 간 납품단가·기술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대규모 설비투자가 실제 집행될 수 있도록 세제와 인프라 지원을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