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짜유기를 두드리자 낮고 묵직한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처음에는 그저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리가 길어지자 느낌이 달라졌다. 귀로 듣는다기보다 바닥을 타고 온 미세한 진동을 몸으로 느끼는 쪽에 가까웠다.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방짜유기 사운드배스’를 체험했다. ‘월드 웰니스 관광 페어 인 서울 2026’의 하나로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사운드 힐링 아티스트 박설아가 진행을 맡았다.
사운드배스는 말 그대로 ‘소리 목욕’이다. 몸을 물에 담그는 대신 싱잉볼이나 공, 차임 등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한다. 이날 주인공은 히말라야 싱잉볼도, 크리스털 싱잉볼도 아니었다. 한국의 방짜유기였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놋그릇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선뜻 상상이 되지 않았다. 명상이라고 하면 가부좌를 틀고 호흡에 집중하는 모습부터 떠올랐지만 이곳에서는 편안한 자세로 누워 눈을 감는 것부터 시작했다.
첫 소리는 예상보다 컸다. 금속 특유의 맑은 소리가 났다가 낮은 진동이 뒤따랐다. 크기가 다른 방짜유기를 차례로 울리자 음색과 높이도 조금씩 달라졌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 소리가 멀어졌다가 다른 방향에서 다시 나타나는 듯했다.
몇 분 동안은 머리가 더 바빴다. 오늘 해야 할 일, 휴대전화에 온 메시지, 끝나고 어디로 갈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명상을 하러 와서 왜 이렇게 생각이 많지’라는 생각까지 생각에 보태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소리를 따라가는 일이 더 쉬워졌다. 방짜유기를 한 번 울리면 소리는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선명했던 음이 가늘어지고 다시 잔향만 남는다. 다음 소리가 나오기 전까지 그 끝을 좇다 보니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조금씩 줄었다.
시간 감각도 묘해졌다. 잠이 든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의식은 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왔다. 명상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생각도 그쯤부터 사라졌다.
실제 국내외 사운드배스 참가자 후기에서도 이런 경험은 반복된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방짜유기 싱잉볼을 경험한 참가자는 누워 있다 잠이 들 정도로 편안했고, 바깥은 관광객으로 붐비는데 실내에서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해외 첫 체험자 가운데도 세션 중 시간 감각을 잃거나 잠과 깨어 있음 사이의 몽롱한 상태를 경험했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날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해 소리와 내 몸에 집중하니 마음이 편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인데 1시간이 1시간이 아닌 거 같았고 허리가 많이 아프다는 걸 깨달았고 내 몸에 대해 알게 됐다”는 후기가 나왔다.
이날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 소리를 만드는 물건이었다.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뒤 불에 달구고 두드리는 과정을 반복해 만드는 한국의 전통 유기다. 오랫동안 밥그릇과 제기 등 생활용품으로 사용해온 물건이다. 그런데 식탁 위에 있던 놋그릇이 명상 공간으로 옮겨오자 완전히 다른 물건이 됐다.
박설아 선생님이 이끄는 사운드배스 프로그램에서도 방짜유기는 꾸준히 사용돼왔다. 지난 6월 서울 성북구에서 열린 K사운드배스는 방짜유기 싱잉볼과 국악 사운드를 결합했고, 같은 달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국악 명상 프로그램에서도 방짜유기 싱잉볼이 등장했다.
한국적인 웰니스 관광의 가능성도 이 대목에서 보인다. 싱잉볼과 사운드배스 자체는 해외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진 웰니스 프로그램이다. 서울까지 와서 해외에서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그대로 반복한다면 관광 콘텐츠로서 차별화하기 어렵다.
방짜유기는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용한 전통 공예품을 직접 두드리고 그 소리를 듣는다. 여기에 한옥이라는 공간과 국악을 결합하면 해외에서 접하기 어려운 경험이 된다. 경복궁을 보고 북촌을 걷는 것이 한국의 공간을 소비하는 여행이라면 방짜유기 사운드배스는 한국의 ‘소리’를 경험하는 여행인 셈이다.
거창한 장비도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오래된 놋그릇 하나가 콘텐츠의 중심에 있다. 마지막 방짜유기의 울림이 잦아든 뒤 눈을 떴다. 밖으로 나오자 안국의 풍경은 그대로였다. 자동차가 지나가고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빠르게 걸었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한 시간 전보다 머릿속이 조금 조용했고 놋그릇에서 시작된 울림은 생각보다 길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사진=김두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