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누가 보험의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인가?

오명진 두리 대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스타트업이 기존 강자에 도전해 무너뜨리는 과정을 뜻한다. 신기술이 승자와 패자를 결정한다는 개념으로 2003년 처음 제시됐다. 비즈니스 리더들의 최고 화두이기도 했다. 그런데 2019년 이 개념을 뒤집는 새로운 이론이 제시됐다. 바로 '디커플링(Decoupling)'이다.

 

신생 스타트업이 기존 거대 기업을 위협하고 무너뜨리는 것은 IT를 기반으로 한 신기술이 아니며, 핵심은 고객가치사슬(CVC, Customer Value Chain)인 비교·평가-선택-구매-소비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소비자의 구매를 보다 편리하고 빠르게 만드는 기술집약적 발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며, 기존 대기업이 정의해 놓은 CVC에서 소비자가 품고 있는 불만 또는 니즈를 찾고 약해진 고리를 찾아 끊어버리고 다시 재정의 하는 것이 시장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산업도 디커플링이 가능할까? 그리고 기존 거대 보험사를 무너뜨리고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는 디커플러가 탄생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미 가능한 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곧 기존 종합보험사의 가치사슬을 끊어버릴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보험이 등장할 것이다.

 

보험가입의 CVC는 대략 5단계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보험에 가입할 필요성을 먼저 느끼고, 다양한 보험사를 알아보고, 한 군데 이상의 보험사에 견적을 요청한 다음 보험사가 관련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주면, 일정기간 단위의 보험계약에 서명을 한다. 물론 여기에 본인이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경우 해지의 과정까지 포함이 될 수 있다. 해당 과정에서 소비자가 갖고 있는 불만 또는 니즈를 정리하면, 보험사가 일방으로 정한 기간 또는 범위에 한해서만 계약해야 한다는 것과 견적을 변경하고 서류를 받고 다시 서명하는 재과정의 절차에 있어 시간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질병 등의 사람의 신체에 관한 보험은 가입 후 건강상의 변화가 있을 수 있어 만기까지 계약의 변경없이 유지해야 하는 한계가 있지만, 그 외의 영역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험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도 많기 때문이다.

 

2012년에 설립된 트로브(Trov)라는 보험 플랫폼은 사용자가 본인이 소유한 개별물품을 본인이 원하는 기간에만 보험을 가입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을 제공함으로써 보험의 CVC를 파괴하고 있다. 본인이 소유한 자전거, 디지털카메라, 고가의 노트북 등을 미리 등록하고 보장받고 싶은 물품만 보장받고 싶은 순간에 스위치를 ‘ON’으로 켜두기만 하면 보험이 가입되고 중지된다. 실제 보험이 보장하는 고장, 도난, 분실 등의 사고 발생시에도 보험사 직원과 연락할 필요없이 앱을 이용해 보험금을 바로 청구할 수도 있다.

 

트로브가 보험을 보다 쉽고 빠르게 가입할 수 있는 새로운 앱을 개발했다는 자체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트로브가 디커플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존 보험에서의 CVC에서 견적을 요청하고, 서류를 작성하고, 서명하는 과정을 단순히 ‘ON’이라는 보험을 켜는 하나의 과정으로 바꿈으로서 CVC를 분리시킨 것이다.

 

국내에도 동일한 형태의 보험이 이미 온디맨드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진입해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배달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드라이버의 보험은 이전까지 사각지대에 있던 것이 사실이다. 일의 특성 상 장기간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으며,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상황에 본인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연단위 이상의 보험을 가입하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연단위의 시간을 쪼개고 실제 배달하는 시간 동안에만 보험의 보장을 받게 하는 형태로 변경이 됐다. 이는 물론 배달앱을 통한 보험의 시작시간과 종료시간을 모두 체크할 수 있다는 기술의 기여 또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무엇보다 소비자(드라이버)가 원하는 디커플링을 보험 가입에 적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향후 보험 CVC에서 보다 다양한 형태의 디커플링이 시도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의 중심에 바로 소비자가 있다는 것이며, 그들의 소비 단계에 주목하여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디커플링이 많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오명진 ㈜두리 대표, 보험 계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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