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양적완화’ 거듭하는 한은…높아지는 과다 유동성 우려

한은, “물가상승률 안정적…큰 문제 아냐”
부동산·주식으로 흘러가는 유동성…주거 불안·버블 염려

사진=연합뉴스

[세계비즈=안재성 기자]한국은행 기준금리가 0.5%까지 내려간 초저금리 시대에 ‘한국판 양적완화’까지 거듭되면서 과다 유동성으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일단 물가상승률은 0%대에서 관리되고 있어 하이퍼인플레이션 위험은 낮은 상태다. 그러나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흘러들어가는 추세라 집값 상승으로 인한 주거 불안 및 주식 버블이 염려되고 있다.

 

◆중소형 아파트 중심 집값 오름세 지속

 

한은은 올해말까지 총 5조원 내외 규모의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곧 4차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될 예정이라 채권수급 불균형과 시장금리 급변동을 선제적으로 완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한은은 이미 올해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총 4번의 국고채 단순매입을 시행했었다. 규모는 각각 1조5000억원씩 총 6조원이었다. 이번에 5조원 가량 추가 매입하면, 올해에만 11조원에 달하는 국채를 매입하는 셈이다.

 

이는 결국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일종의 양적완화에 해당한다.

 

우선 걱정되는 부작용은 시중 유동성이 너무 과다해져서 일어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 불어 닥친 하이퍼인플레이션도 승전국에 지불해야 할 전쟁배상금 등의 용도로 당시 독일 중앙은행이 무이자 국채를 마구 매입했던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다만 한은 측은 “현재 물가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어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위험은 없다”고 강조한다. 올해 상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6%, 7월에도 0.3%에 그쳤다. 한은은 하반기 물가상승률을 0.3%, 연간 상승률은 0.4%로 예측했다.

 

그러나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위험이 없다 해도 시중에 너무 많이 풀린 유동성은 결국 부동산과 주식으로 흘러가 가격 급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01% 올라 14주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오름세가 완화되긴 했지만, 아직 멈추진 않고 있다.

 

이미 올해 수도권 요지의 아파트들 중 수억씩 오른 곳이 많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풍부한 시중 유동성이 집값을 밀어올리는 재료 중 하나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 수석전문위원도 “정부의 초고가 아파트 규제로 거래가 위축되는 모습”이라면서도 “다만 시중 유동성이 워낙 많아 아파트 가격이 쉽게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서민들이 많이 찾는 중소형·중저가 아파트는 고가 아파트 가격보다 더 크게 뛰고 있다.

 

국민은행은 서울 아파트값을 5등분 했을 때 1분위(하위 20%)의 평균가격(4억3076만원)이 2년 전보다 37.8% 오른 것으로 집계했다. 같은 기간 5분위(상위 20%) 평균 가격(18억8160만원) 상승률(21.5%)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1년 전과 비교해서는 1분위 평균 가격이 19.5%, 5분위가 12.9%씩 각각 올랐다.

 

박 위원도 중저가 아파트 가격 상승세를 주도하는 유동성에 대해 거론하면서 “당분간 초고가 아파트와 중저가 아파트 가격이 다른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곧 치솟는 전세 가격과 맞물려 서민들의 주거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달 7일 조사 기준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은 57주 연속,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63주 연속 상승세를 지속 중이다. 최근 상승률도 수도권이 0.16%에 달해 매개 가격보다 훨씬 더 가파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전셋값이 너무 많이 오른 데다 중저가 아파트 가격은 계속 뛰는 추세여서 서민이 살 집을 구하기가 무척 힘들어졌다”며 “올 가을 이사철부터 서민의 주거 불안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동성 장세’ 언제까지?

 

부동산뿐 아니라 증권시장도 활황세다. 지난 14일 코스피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3% 뛴 2427.91로 장을 마감했다. 코스피는 9월 들어 2400선을 넘나들며 고공 행진 중이다. 코스피가 이 정도로 날개를 단 것은 ‘반도체 열풍’이 거셌던 지난 2017년 이후 처음이다.

 

올해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이 확실시되고, 코로나19가 재확산하는 등 불황이 뚜렷한 상황에서도 증시가 호조세인 것은 풍부한 시중 유동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해외자금 이탈에도 불구하고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유동성이 공급돼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도 “초저금리와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 때문에 투자처를 찾기 못한 유동성이 증시 주변에 계속 머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증시 대기자금은 역대 최대 규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63조2582억원으로 집계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하루만에 15조8618억원이나 급증해 눈길을 끌었다.

 

같은날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도 하루만에 13조원 가량 늘어난 58조1313억원을 나타냈다. 역시 이례적인 증가폭이다.

 

증시에 돈이 흘러넘치면서 최근 SK바이오팜에 30조9000억원, 카카오게임즈에 58조5543억원 등 공모주들도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증시에 유동성은 더욱 유입될 가능성이 커 내년까지는 IPO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게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코스피 상장사의 상반기 영업이익이 24.2% 감소(한국거래소 집계)하는 등 기업 실적이 안 좋은 상황에서 주가만 고공비행하는 건 버블의 위험과 연결된다. 이미 전문가들은 유동성 랠리의 종료에 대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유동성 장세가 끝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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