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주=전경우 기자] 인파로 붐비지 않는 호젓한 가을 여행지를 찾는다면 전북 완주를 후보에 올려보자.
완주는 ‘호남의 금강산’이라는 대둔산을 비롯해 화암사, 아원고택 등 지친 심신을 위로해 주는 자연 속 명소가 즐비하다. 수도권에서 차량으로 3시간대에 진입할 수 있고, 인접한 전주 익산 역을 이용하면 KTX 이용도 수월한 편이다.

▲대둔산
대둔산은 완주의 랜드마크다. 원효대사는 대둔산을 가리켜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격찬했다고 전해진다.
해발 878m 우뚝 솟은 최고봉 마천대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바위 봉우리들의 자태가 수려하다. 흙보다는 돌멩이가 많은 산이며, 주요 구간의 경사도가 만만치 않지만, 케이블카로 6분이면 정상 인근까지 올라갈 수 있어 둘러보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대둔산의 명물은 보기만 해도 아찔한 ‘삼선 철계단’이다. 원래는 ‘금강구름다리(길이 81m)’가 더 유명했는데 최근 젊은층이 산을 많이 찾기 시작한 이후, SNS에서는 더 자극적인 비주얼의 철계단 사진이 인기다.
계단은 총 127개, 수직에 까운 급경사다. 앞만 보고 걸어가면 별다를 것이 없지만 잠시 아래를 본 순간 고소공포증이 덮쳐온다. 한 번에 60명까지 오를 수 있고, 장난은 절대 금지다. 계단 정상에 오르면 주변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기서 30분을 더 가면 마천대 정상이다. 이 구간은 너덜 지대에 가까운 돌계단으로 이뤄져 있는데 길이 험한 편이라 등산화, 트래킹화가 필수다. 정상에는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표지석이 있는 탑과 전망대가 있다.
천등산 하늘벽, 신선암벽, 옥계동 양지바위에서는 대둔산 관리사무소를 통한 사전 신청을 통해 암벽등반도 가능하다.





▲화암사
불명산 화암사는 천년 고찰의 분위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절이다. 조선시대에 불탄 절을 새로 지었지만 근대 이후 요란스러운 치장을 최대한 자제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켜냈다. 절 아라에도 번잡한 상가 등이 없어 청정도량의 느낌을 더한다.

비밀스러운 진입로부터 범상치 않다. 계곡 깊숙한 곳에 절을 감춰 놓은 모양새다. 숲길 끝자락 돌계단을 올라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은 우화루(보물662호)다. 전방에서는 2층이지만 지대가 높은 내정쪽에서는 단층으로 보이는 건물이다. 내부 공간은 바깥에서 보여지는 모습에 비해 무척 넓다. 100명 이상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규모다. 이 공간덕에 800여평에 불과한 땅에 여러 건물을 모아 놓은 화암사 내정이 옹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화루의 우화(雨花)는 법화경에서 유래한 말로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다는 뜻’이다. 백양사, 백련사, 표충사, 봉정사 영산암 등 다른 절에서도 같은 이름의 건물이 있다.
국보 제316호로 지정된 극락전은 처마를 지탱하기 위해 하앙이라는 부재를 받쳐 놓은 독특한 건축양식이 유명하다.
국보나 보물은 아니지만 유명한 건물이 이 절의 화장실이다. 주차장으로 연결된 계단 옆 2층 건물인데 산악지형과 조화를 이루는 절묘한 설계가 재미있다.

▲아원고택과 오성한옥마을
아원(我園)은 ‘우리들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이름대로 된 것일까. BTS가 화보집을 촬영한 이후 아원고택은 완주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됐다.
아원은 현대와 전통, 공학과 인문학의 조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지하철 승차 게이트처럼 생긴 출입구를 지나면 먼저 오스 갤러리가 나온다. 누드콘크리트로 마감한 모던한 건축물이다. 한 켠에는 수변 공간이 있는데 지붕이 열리는 특이한 구조다. 진공관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느릿한 음악이 자칫 차가워 보이는 콘크리트 건물 내부를 편안하게 채워준다.
작품을 감상한 뒤 좁은 계단을 오르면 고택과 연결되는 아담한 정원이 나온다. 대숲앞에 핑크뮬리를 심어놨다. 역시 전통과 현대의 조화다. 정원을 지나 왼편에 있는 대문으로 들어서면 고택 마당이 나온다.
아원에 있는 고택은 경남 진주와 전남 정읍 등에서 옮겨온 것으로 나이가 150년∼250년 가량 됐다. 건물의 배치는 전통 고택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어디서 봐도 종남산과 서방산, 위봉산 전망을 가리지 않도록 배려한 듯 하다. 고택은 각 건물마다 낭만 가득한 당호를 붙였다. 만휴당(萬休堂)은 ‘만사를 제쳐놓고 쉼을 얻는 곳’, 연하당(煙霞堂)은 ’안개와 노을이 있는 곳’, 설화당(設話堂)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별채 천목다실은 오스갤러리처럼 모던한 누드콘크리트 현대건축물이다. 내부 인테리어는 한옥의 느낌을 살렸고 호텔급 시설을 갖췄다.
아원을 제대로 보려면 숙박을 해야 한다. 일반 관람객은 정오∼오후 4시까지(갤러리는 오전 11시∼오후5시)만 관람이 허용된다.
아원 전 지역은 7세 미만 어린이 입장이 불가능한 노키즈존이다. 4개동 11개 객실은 5성급 호텔보다 숙박비가 비싸도 주말 숙박을 하려면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아원 바로 아래에는 오성한옥마을이 있다. 50가구 중 23채가 한옥과 고택으로 이뤄진 곳이다. 신축 한옥은 고택 특유의 정취는 덜하지만 방음과 단열이 우수해 부담이 덜하다. 한옥마을에서는 전통방식의 시골밥상과 부꾸미 등 먹거리와 마을안길 걷기 및 생태 숲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산속등대
산속등대는 40년 방치됐던 종이공장을 개조해 2019년 5월 개관했다. 쌀창고 자리에 들어선 삼례책마을과 결이 비슷한 도시재생공간이다.
제1,2미술관, 체험관(어뮤즈월드), 아트플렛폼, 야외공연장, 모두의 테이블, 등대, 수생생태정원, 슨슨카페 등을 갖췄다. kw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