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둘러싼 보험업계 ‘딜레마’…“디지털화하긴 해야 하는데”

여전히 압도적인 대면 채널 비중…“푸대접하면 바로 떠나”
“우선 내부 디지털화부터…영업 채널 변화는 천천히”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비즈=안재성 기자] 보험업계가 금융권의 디지털화 바람에 맞춰 디지털화에 나서고 있지만 전면적인 디지털화 작업에는 속도조절을 하고 있다.

 

여전히 대면 채널 비중이 압도적이다 보니 디지털화에만 치중할 경우 자칫 실적에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은 모두 신년사를 통해 디지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변화 속에서 생존하고 성장하려면 디지털 기반으로 기존 비즈니스를 혁신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무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금융업 전반에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상품과 서비스는 물론 기획부터 출시,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치 사슬의 디지털화를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맞춰 보험사들은 제각기 디지털 관련 전담부서를 확대 개편하는 등 디지털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영업 부문의 디지털화에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4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생명보험사들의 사이버마케팅(CM) 채널 초회보험료는 198억원으로 전년동기(143억원) 대비 38.5% 늘었다. 성장세가 빠른 듯 하지만, 아직 대면 채널의 2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텔레마케팅(TM) 채널은 아예 후퇴했다. TM 채널 초회보험료는 559억원에 그쳐 전년동기의 788억원보다 29.1% 줄었다.

 

반면 대면 채널은 여전히 활황세다. 생보사 대면 채널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초회보험료는 5조8599억원으로 집계돼 전년동기 대비 28.8% 증가했다. 생보사의 대면채널 비중은 무려 98.7%에 달한다. 재작년보다 비중이 0.7%포인트 확대됐다.

 

언택트의 일종인 TM 채널은 크게 부진했으며, 오히려 대면 채널이 대폭 성장하면서 비중이 더 높아진 것이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금융권 전체에 언택트 열풍이 거셌던 것과는 상반되는 흐름이다.

 

대면 채널의 절대적인 비중은 손해보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손보사들의 CM 채널 원수보험료는 4조1262억원으로 전년동기(3조4272억원) 대비 20.4% 늘었다. TM 채널(6조2636억원)도 14.5% 증가했다.

 

하지만 둘을 합쳐도 여전히 대면 채널(60조4986억원)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대면 채널 원수보험료도 안정적인 성장세(4.2% 증가)를 유지하면서 전체 원수보험료 중 85.3%의 비중을 차지했다. 생보사들보다는 낮지만, 역시 압도적인 비중이다.

 

영업 부문에서도 비대면 채널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은행, 증권사 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인 셈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상품은 구조가 복잡해 언택트로는 충분히 이해하기 힘들다”며 “대부분의 고객들이 보험설계사를 대면으로 여러 차례 만나 심도 깊은 설명을 들은 뒤 가입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손보 상품보다 생보 상품이 더 복잡한 탓에 이런 성향도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20년 이상 보험료를 내야 하는 보험상품은 고객들이 선뜻 손을 내밀기 어렵다”라며 “대면 채널에서 끈질기게 설득해야 비로소 마음이 움직이지, 그 전에 먼저 보험 가입을 알아보는 고객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보험사들은 업무 시스템의 디지털화, 인공지능(AI)을 반영한 보험금 지급 시스템 구축 등 내부 업무 구조의 디지털화에 우선 주력하고 있다. 영업 부문의 디지털화는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보험설계사는 이직이 잦은 직종”이라며 “디지털화에 집중한다고 대면 채널을 푸대접했다간 다수의 보험설계사들이 즉시 짐을 쌀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경우 영업실적이 급감해 오히려 손해를 볼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은행이나 증권사 등은 점포를 정리해도 영업실적 타격이 별로 없는 반면 보험사는 대면 채널의 점포가 계속 늘어야 영업실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며 “일단 중심축을 대면 채널로 유지하면서 비대면을 차근차근 키워가는 게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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