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비즈=박정환 기자] 정부가 ‘깜깜이 심사’로 논란을 빚어왔던 고분양가 심사제도 개편에 나서면서 무주택자들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최대 90%까지 책정되면 주택 마련을 위한 초기 부담이 그만큼 상승하기 때문이다. 반면 건설사들은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이 한층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14일 건설·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고분양가 심사제도 개선을 두고 부동산 시장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그동안 시장에선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가를 통제해 건설사 등 민간 사업자의 주택 공급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구체적인 기준을 알 수 없는 ‘깜깜이 심사’로 분양가 책정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많았다. 그동안 HUG는 분양가 산정 기준이 입지·브랜드·단지 규모임을 공개했을 뿐 세부사항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오는 22일부터 고분양가 심사 시 주변 시세의 85~90%를 상한으로 고려하는 심사 규정 개정안을 시행할 방침이다. 이에 더해 입지와 단지 특성에 따라 비교 사업장을 선정하고, 분양가 심사기준을 공개해야 한다. 시장에선 심사제도 개선이 분양가 상승을 야기해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주변 시세의 90%까지 상한이 허용되면 분양가가 높아져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의 대출 규제도 무주택자들의 시름을 깊어지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2017년 ‘8·2 대책’을 통해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40%로 제한하고, 2019년 ‘12·16 대책’에선 9억원 초과분에 대한 LTV를 20%로 축소했다. 집값 마련을 위한 신용대출도 지난해 11월 이후 규제가 강화됐다. 무주택자 최모 씨(32)는 “정부 규제로 대출까지 막힌 상황에서 분양가가 오르면 초기 자본이 부족한 젊은층이나 신혼부부는 주택을 구입하기 더 힘들어질 것”이라며 “사실상 대출이 필요 없는 ‘현금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건설사들은 그동안 위축됐던 국내 주택사업이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시세의 50~60% 수준인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90%까지 오르면 그만큼 사업성이 개선돼 정비사업 추진이 수월해질 것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전망이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HUG의 분양가 심사기준 개선으로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에서 민간아파트 공급이 어느 정도 활성화될 것”이라며 “민간 분양가상한제의 심사기준도 HUG와 유사한 수준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HUG의 고분양가 심사는 일부 수도권과 지방광역시 같은 조정대상지역에서만 적용된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실시되는 지역은 HUG의 심사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는 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영등포·마포·성동·동작·양천·용산·서대문·중·광진·강서·노원·동대문·성북·은평 등 18개구 309개동과 경기 광명·하남·과천 등 3개시 13개동에서 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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