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추천이사제 은행권 첫 도입?…기업은행에 쏠린 눈

사외이사 임기 만료 맞물려 제도 도입 여부 관심 커져
윤종원 "여러 채널 의견 듣는 중…특정 후보 자동 선임 아냐"

기업은행에서 은행권 최초로 노조추천이사제가 도입될지 관심이 쏠린다. IBK기업은행 을지로 본점 전경. IBK기업은행 제공

 

[세계비즈=오현승 기자] 은행권에서 노조추천이사제(근로자추천이사제)가 최초로 도입될지 주목된다. 특히 국책은행이자 사외이사 두 명이 공석이 되는 기업은행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25일 은행권에 따르면 기업은행 김정훈 사외이사의 임기는 지난 12일 만료됐다. 또 다음달 25일이면 이승재 사외이사의 임기가 끝난다. 기업은행 노사는 최근 사외이사 후보 추천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고, 노조는 자신들이 추천한 복수의 사외이사 후보명단을 은행 측에 전달한 상태다. 

 

중소기업은행법 제26조에 따르면 기업은행의 사외이사는 은행장의 제청으로 금융위원회가 임명한다.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최근 서면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은행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역량을 갖춘 전문가를 금융위에 제청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직원(노조)을 포함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견을 듣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근로자추천이사제나 노동이사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사안으로서 관련 법률의 개정이 수반돼야 추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는 관련법 개정을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의 선행조건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도 윤 행장은 “3월 중 복수 후보를 제청할 것”이라면서 “사외이사로의 선임 여부는 후보역량에 따라 좌우될 것이며 특정 후보가 자동 선임되는 건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이번 기회에 노조추천이사회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즉 노조가 한 차례 사외이사를 추천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노조추천이사제가 제도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대내외적 환경도 나쁘진 않다. 지난해 1월 노조가 본점 출근 저지 투쟁을 중단하면서 윤 행장, 더불어민주당, 금융노조와 함께 기업은행 임원 선임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약속한 데다, 박홍배 금융노조위원장이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 임명되며 기업은행 노조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서다. 후임 사외이사가 선임되지 않을 경우 현 사외이사의 임기는 자동 연장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난해 1월 29일 중구 을지로 소재 기업은행 본점에서 진행된 제26대 기업은행장 취임식에서 윤종원 은행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아직까지 은행권에서 노조 추천한 인물이 사외이사에 선임된 적은 없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 2019년 3월 박창완 금융위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을 사외이사로 추천했지만 사측은 이를 거부했다. 과거 수출입은행과 KB금융지주에서도 노조추천이사제는 불발됐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노동조합이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제도다. 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쪽은 경영자 중심의 의사결정방식을 견제할 수 있다는 점을 순기능으로 내세운다. 또 현 사외이사제도가 경영진 견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노조추천이사제는 금융지주 회장들의 ‘셀프 연임’, 낙하산 인사 등을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주장한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문재인 대통령공약사항이기도 하다. 정세균 국무총리 역시 국회의원 시절이던 지난 2016년 “투명한 경영을 위해 근로자들이 회사 운영에 참여하고 사용자들도 근로자들과의 사업적 측면의 이해를 폭넓게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면 노사관계의 갈등을 줄이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부정적 여론도 만만치 않다. 반대론자들은 기업경영 자유 침해, 시장경제 원칙 훼손 등을 우려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근로자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의사결정으로 인해 인수·합병이나 신규사업 진출 등 이사회의 전략적인 의사결정이 지연돼 경영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다”며 “근로자가 추천하는 이사가 경영전략, 인사 등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건 기업 고유의 경영권에 개입하게 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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