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도 어김없이 대통령의 개 파양 논란이 불거졌다.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전 대통령이 모두 재임 시절 함께한 개를 퇴임 후 외면했다. 특히 문 전 대통령과 윤 전 대통령은 ‘개념 반려인’을 자처하며 전임자의 파양을 꼬집었지만 결과적으로 비판한 대상의 전철을 밟았다.
최근 서울대공원과 대통령기록관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맡긴 투르크멘 알라바이(Turkmen Alabaý) 두 마리(해피, 조이)는 앞으로도 과천 서울대공원동물원 견사에서 지낸다. 이달 4일 파면된 윤 전 대통령이 사저로 거처를 옮기면서 해피와 조이도 데려갈지가 관심사였지만 결국 대통령실에서 함께한 기존 반려견 6마리, 반려묘 5마리만 품기로 한 것이다.
해피와 조이는 지난해 6월 투르크메니스탄 정부가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기념하며 선물한 개들로 생후 40일쯤부터 머나먼 타국에서 살고 있다. 최대 몸무게 90~100㎏까지 크는 대형견종답게 대통령 관저에서 지낸 약 5개월 만에 몸무게 40㎏를 넘겼고, 더 이상 관저에서 지내기는 어렵다는 판단 아래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진 바 있다.

문 전 대통령도 201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풍산개 2마리(곰이, 송강이)를 선물 받았다. 문 전 대통령은 이들을 청와대에서 돌보다 퇴임 후 사저로 데려갔다. 하지만 대통령 신분으로 받은 선물에 대한 법률상 문제와 예산 논란 등에 휘말리며 곰이와 송이를 사저에서 내보냈다. 둘은 광주 우치동물원으로 옮겨졌다.
박 전 대통령도 2013년 취임 당시 이웃으로부터 선물 받은 진돗개를 탄핵 후 청와대에 두고 떠났다. 이에 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버려진 진돗개가 안타깝지 않나. 대선 출마만 안 했다면 직접 인수해서 키우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도 문 전 대통령의 풍산개 논란에 “강아지는 일반 물건과 다르다. 키우던 주인이 계속 키우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대하는 따스한 이미지를 내세운 두 사람이었기에 반려인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당시 발언이 더욱 힘을 얻었다. 그리고 이는 부메랑이 되어 각자의 치부를 향했다.
문 전 대통령도, 윤 전 대통령도 억울할 수 있다. 정상회담 선물이라지만 사실상 타의로 떠맡게 된 개다. 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반려동물 입양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합사(合飼) 과정”이라며 “두 전직 대통령 모두 다견·다묘 가정이라는 점에서 기존에 돌보던 동물과 새로운 동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선물 받은 개를 청와대 및 대통령실로 데려와 돌보면서 긍정적 이미지를 얻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 전 대통령은 풍산개를 남북 화합의 상징으로 활용했고, 윤 전 대통령 내외도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온화한 이미지를 강화했다. 김건희 여사는 알라바이를 선물 받은 직후 “양국 협력의 징표로 소중히 키워나가고 동물 보호 강화를 위해 더 힘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개를 이미지 메이킹에 활용하고서는 쓰임새가 다하자 외면했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긴다(토사구팽)는 고대 중국의 고사성어가 21세기 한국에서 반복되는 것이다.
동물외교로 선물 받은 개가 계속 문제가 되자 지난해 9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것으로, 국가는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대통령 선물로서 동물을 지양하고, 부득이하게 받게 된 경우 적정한 보호·관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7개월째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애꿎은 동물만 낯선 나라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며 고생 중이다. 중앙아시아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견으로서 국토 80%가 사막인 환경에 맞춰 진화한 알라바이건만, 해피와 조이는 동아시아의 낯선 땅에서 남은 생을 보내야 한다. 원산지가 북한 양강도 풍산 지역인 풍산개는 이중모를 통해 혹독한 추위에 대응하도록 태어났지만, 평균 기온이 훨씬 높은 광주에서 살아가는 곰이와 송강이는 그로인해 여름 무더위가 고생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 이상의 해피, 조이, 송강이, 곰이는 생기지 말아야 한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