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물가 잡기 위한 ‘역환율’ 전쟁 중

 인플레이션 저주는 이어지고 있다. 미국 6월 소비자 물가는 9.1%를 기록하며 1982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러한 물가 급등은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100bp 인상하는 ‘울트라 스텝’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경기침체 우려를 확산하는 모양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도 고공행진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6월 세계은행은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면서 많은 나라가 1970년대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의 경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불안, 중국 경제 둔화 우려, 높은 물가 수준 등으로 대부분의 나라가 경기침체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사상 처음으로 0.5%포인트 올렸다. 6월 소비자 물가가 6%대 뛰면서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물가 불안 지속과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를 감안한 결정이라고 풀이된다. 멈추지 않는 물가 상승세와 코로나19 재유행, 수출 증가세 둔화 등 복합 불안요인이 커지는 가운데 통화정책의 긴축 강도마저 거세지면서 국내도 경기 침체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또 달러화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은 물가가 안정수준에 머물 때까지 통화 긴축이 이어질 것이다. 여기에 향후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 확대 여파로 안전자산선호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달러에 대한 수요는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여타 국가의 자국 통화가치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론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하락하면 수출 가격 경쟁력이 생겨 국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 이에 각국의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가치를 하락하는 쪽으로 전략적 포지션을 취해왔다. 이것이 일반적인 ‘환율전쟁’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커진 이유도 여기에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다. 지금은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입물가가 상승하게 된다. 수입물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전이된다. 따라서 자국 통화가치를 높이기 위해 기본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의 선택이 불가피하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를 스스로 평가절상하는 새로운 현상인 ‘역환율전쟁’이 현재 일어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3개월간 금리를 올린 국가는 55개국이고, 이들은 60차례가 넘는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향후 6개월 안으로 주요 중앙은행들이 추가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너나없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다 보니 환율 안정화를 위해 결국 외환 당국이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결국 외환 곳간을 열 수밖에 없다. 달러를 매도해 자국의 환율 하락을 방어하는 실탄으로 사용할 것이다.

 

 환율의 방향성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존재할 것이다. 자국 통화 가치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국가의 소비자는 이 전쟁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달러 가치 강세는 다국적 기업,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 및 신흥국을 패자로 만들 것이다. 또 달러 부채를 가지고 있는 정부, 기업 또는 금융기관은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다. 국내에서도 지금처럼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 업종은 웃을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 원자재를 더 비싸게 구입해야 하는 업종에서는 패자가 될 것이다.

 

 환율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환율을 결정하는 요소들은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는 달러 강세라는 흐름 속에 당분간 지내야 한다. 그에 맞춰 외환 시장도 접근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지금 성장보다 물가에 방점을 찍어 대응하고 있다. 역환율전쟁은 미국의 금리 인상 스케줄이 끝나야 종식할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이미 1300원을 넘었다. 원화강세를 이끌 요인이 부족한 상황이기에 원화 약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현재 상황이 금융 또는 경제 위기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실물경제로 파급될 수 있는 전초전이 될 수 있기에 우리는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물론 경상수지 흑자 지속 및 외환건정성 규제 강화 등을 통해 국제금융시장 불안에 대응하는 경제 기초체력은 과거 어느 시점보다 강하다. 그럼에도 대외불확실성 확대는 급격한 자본유출입 변동을 초래하는 원인이기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치솟는 원·달러 환율은 국내 기업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기업들도 헤지전략을 준비해야만 한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시장분석팀장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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