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휠체어 타고 몸무게 재고, 진료 동선 최소화… 서울 첫 ‘장애친화 산부인과’ 가보니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4번 진료실. 이곳은 그동안 병원을 찾기 어려웠던 장애 여성들의 편안한 진료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최근 개소한 이곳 장애친화 산부인과는 서울대병원이 수년간 공을 들인 공공의료 사업이다.

 

산부인과에 대한 자발적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장애인은 필요한 산부인과 진료를 받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서울대병원은 이같은 상황에 공공의료에 이바지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장애친화 산부인과 사업’에 참여했다.

 

이곳은 고위험 산모 진료 분야의 명의인 박중신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산부인과 교수)가 이끌고 있다.

 

장애친화 산부인과에서는 365일 24시간 고위험 임산부의 분만과 응급 진료가 이뤄진다. 외래진료도 되도록 이동을 줄이고 한 장소에서 진료와 초음파 검사까지 이뤄질 수 있도록 조치했다. 외래·분만장·병동·신생아실·장애인 전용 화장실 등이 모두 한 층에 위치해 있다.

노수경 서울대병원 장애친화 산부인과 전담 코디네이터가 장애친화 산부인과 진료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정희원 기자

“휠체어를 탄 환자가 편안하게 다니려면 이동공간에 최소 1.2m의 폭이 확보돼야 합니다. 그동안 대기실 양쪽으로 뒀던 의자를 한데 모아 통로를 더 넓혔습니다.”

 

1일 만난 노수경 서울대병원 장애친화 산부인과 전담 코디네이터의 설명이다. 코디네이터는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찾는 환자의 편의를 위한 모든 요소를 담당하며 원활한 진료를 지원한다.

 

산부인과를 둘러보니 기존보다 이동 폭은 넓어졌고, 몸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이동 동선에 손잡이도 설치했다. 시각장애 여성이 쉽게 진료 공간을 파악하도록 점자블록도 추가했다. 출입문도 몸이 불편한 사람이 다니기 쉬운 터치식 자동문이다. 접수‧수납을 위한 산부인과 통합원무 창구도 휠체어를 탄 환자의 눈높이에 맞춘 공간이 있다.

 

노수경 코디네이터와 함께 4번 진료실을 찾았다. 보통 대학병원은 예진실, 진료실, 초음파실에서 각각 진료를 봐야 한다. 반면 이곳에서는 원스톱 진료가 가능해 이동의 부담을 줄였다.

 

진료실 근처에는 휠체어를 타고도 몸무게를 측정할 수 있는 체중계가 보인다. 휠체어 없이는 서 있지 못해 진료에 앞서 체중을 재지 못하는 환자가 많았다는 게 노 코디네이터의 설명이다. 환자의 이동을 돕는 이동식 전동리프트와 전동휠체어 충전기도 비치했다.

노수경 전담 코디네이터가 이동식 전동리프트를 설명하고 있다. 뒤에는 특수 휠체어가 보인다. 사진=정희원 기자

진료실 내부는 언뜻 보이게 다른 진료실과 한눈에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노수경 코디네이터는 “겉보기에는 기존 진료실과 달라 보이지 않아도 환자 편의를 1순위에 둔 요소들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이 공간은 휠체어 탑승 후 회전할 수 있는 최소 공간인 1.4m*1.4m 면적의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옷을 갈아입기 쉽도록 접고 펼 수 있는 보조 침대(성인 기저귀 교환대)도 갖췄다.

노수경 전담 코디네이터가 높낮이가 조절되고 침대로도 활용할 수 있는 진료의자를 시연하고 있다. 정희원 기자

내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특수 진료 의자다. 일반 진료의자같아 보이지만 기존과 달리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다. 등받이 조절로 침대로도 변신할 수 있어 환자와 의사 모두 편안한 진료가 가능하다.

 

노수경 코디네이터는 “몸이 불편한 여성 중에는 진료의자의 높낮이 조절이 이뤄지지 않아 휠체어에서 내려서 다시 진료의자로 기어올라갔다거나, 진료실 입구가 좁아 휠체어가 들어가지 못해 진료를 포기했다거나, 어렵게 진료를 봐도 분만은 대학병원으로 갈 것을 권고받는 등 환자들의 고충이 있었다”며 “다양한 장애친화 요소를 적용해 환자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특수 휠체어에의 손잡이를 내리면 이동이 보다 수월해진다. 사진=정희원 기자

실제로 장애친화 산부인과 개소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문의전화가 많이 들어왔다는 게 노 코디네이터의 설명이다.

 

이날 만난 박중신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은 “여성장애인들은 여러 가지 의학적 문제로 인해 다른 진료과와의 협진이 필요함에도 지금까지 편의 시설이나 장비, 인력 등이 제대로 뒷받침이 되지 못해 진료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며 “장애친화 산부인과는 안전한 임신·출산 환경과 생애 주기별 여성질환 관리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여성장애인 건강 증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장애친화 산부인과 개소식에서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한편, 서울대병원에서 장애 산모의 분만은 1년에 2건 정도 이뤄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고, 중등장애를 가진 환자는 임신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아서 경증장애 환자가 대부분이다.

 

반면 환자 연령대가 넓은 부인과 진료는 60건 이상이 넘는다. 병원 측은 이번 개소를 통해 보다 많은 환자가 편안한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은 최근 열린 장애친화 산부인과 개소식에서 “공공의료를 실천하는 국가중앙병원으로써 앞으로도 사회적 책무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장애친화 산부인과는…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간호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약사 등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외래‧분만장‧병동에 코디네이터를 배치해 여성장애인의 진료 전 과정에서 24시간 공백 없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상급종합병원으로서 24시간 365일 고위험 분만, 응급진료가 이뤄진다.

 

태아센터 및 희귀 질환센터를 통해 태아에게 유전될 수 있는 장애, 선천성 기형을 포함한 태아 이상 질환이 의심되는 경우 다학제적 진료도 가능하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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