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에 꽂힌 사람’들의 이야기, 예측불허 전개가 ‘다큐의 매력’”

◆영화감독 제레미 워크먼
‘몰입하는 사람들’ 이야기 다뤄
한가지에 몰입하며 성장하는 사람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가 매력
‘릴리의 도미노세계’로 내한

제레미 워크먼 감독. 디아스포라영화제 제공

“저는 항상 무언가에 열정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에 매료됩니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제레미 워크먼의 말이다. 그는 하나에 몰입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감독으로 잘 알려졌다.

 

워크먼 감독이 최근 영화 주인공 릴리 헤베시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최근 그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릴리의 도미노 세계(Lily topples the world·2021)’가 제11회 디아스포라영화제 상영작으로 초청받으면서다.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주한 미국대사관과의 협력을 통해 영화 상영과 두 사람의 초청을 성사시켰다. 영화는 유튜브 영상 조회수 15억뷰를 기록한 세계적인 도미노 아티스트 릴리 헤베시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2일, 한국을 찾은 워크먼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다.

 

“그렇다. 미국에서도 한국 문화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디아스포라영화제 역시 인디필름 분야에서 명성이 높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잘 알 것이다. 이와 관련 영화를 한국에서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을 수 없이 기뻤다. 체류하는 동안 서울, 인천의 많은 곳을 둘러봤다.”

 

-워크먼 감독의 작품세계에서는 주로 ‘극도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 다뤄진다. 이들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보인다. 어떤 점에 매료되나.

 

“정확히 짚었다. 가장 좋아하는 주제가 바로 ‘사람’, 특히 특정 주제에 대단한 열정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다루는 것을 좋아한다.

 

릴리 헤베시 역시 내가 다루고 싶은 면에 완벽히 부합한 인물이었다. 아티스트로서의 열정이 가득하고, 도미노 이외의 다른 요소, 예컨대 돈을 버는 것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런 점이 내가 찾는 완벽한 뮤즈 자체였다.”

 

-스스로도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확실히 그렇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집중하고 포커스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요소다. 나 역시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열정을 갖고 집착할 정도로 집중한다. 1년 이상이 드는 것은 기본이다. 이번에 상영한 ‘릴리의 도미노 세계’ 역시 3년 가까이 500시간 이상 촬영했다.”

 

-주인공 섭외는 어떻게 하나.

 

“좋은 질문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은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직접 만나보고, 그들에게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책이나 자료 등에 나온 인물을 찾아보기도 한다. 영화감독은 세상과 단절된 경우가 많은데,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만나보는 과정이 즐겁다.”

‘릴리의 도미노 세계’ 포스터

-릴리 헤베시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내 경우 본래 릴리의 엄청난 팬이었다. 비디오를 보면서 작품에 너무나 매료됐다. 이 사람은 누구이고,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는지 알고 싶어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릴리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촬영에 긍정적이었나.

 

“아니었다. 이미 만났을 때부터 유명한 인물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깊게 파고 들어가보려는 시도에도 나서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만으로 18살밖에 되지 않은 학생이었다. 부담이 컸을 것이다. 나 역시 릴리의 나이에 누군가가 ‘당신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어보자’, 하면 의아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설득 과정은 어땠나.

 

“가족들을 만나고 수많은 이야기를 하며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히 릴리의 가족들은 그동안의 내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내 경우 ‘사람’이란 주제 자체가 멋진 이유를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려 한다. 이런 부분에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릴리의 멋짐’을 세상에 펼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릴리 헤베시와 3년간 함께하며 인상깊은 경험이 있었다면.

 

“3년간 촬영한 모든 순간이다. 릴리는 첫만남 당시부터 유명인이었고, 이미 멋진 일들을 많이 하고 있었다. 점차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소녀에서 전문적인 도미노 기사이자 아티스트인 ‘프로’로 변해가는 과정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이런 과정을 모두 따라다니며 찍었다. 숨은 다이아몬드를 발견했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 릴리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 사람에 자체에 감동했다. 관객들도 영화를 통해 내가 본 것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사람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다보면 감독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흘러가지 않을 때도 있을 것 같다.

 

“다큐를 만든다는 것은 삶의 일부를 다룬다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어디로 튈지 모르지 않나. 그것을 담는 게 다큐멘터리의 매력이라고 본다. 무한한 가능성이 매력적인 장르다.

 

예를 들어 나는 릴리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 줄 몰랐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 처음에 만난 어린 소녀의 얼굴이 장난감 박스에 실리게 됐다. 이런 식으로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점이 흥미롭다.”

 

-이번에 상영한 영화에서는 다른 디지털 크리에이터들도 함께 다뤘다. 영화 감독으로서 최근의 영상을 대하는 젊은 세대의 태도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 릴리 세대의 경우 미디어, 콘텐츠를 다루는 방법이 기성세대와 다르다.

 

세상 보는 관점도 다른데,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본다. 젊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현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고, ‘과거에 이랬으니 지금도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없다. 이같은 ‘새로운 방식’에 대한 도전정신을 만든 데에는 SNS와 영상 플랫폼 등이 분명 영향을 미쳤다. 변화를 기다리기보다 변화를 직접 만드는 세대다.

 

릴리도 마찬가지다. 도미노를 좋아하는 소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도미노를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한다. 이런 부분이 참 흥미롭다. 만약 어린 시절의 나였다면 도미노 분야에 실력이 있더라도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TV에서 불러주거나 뉴스에 나오기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릴리처럼 스스로 유튜브를 개설하고,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고, 자신이 스스로 결정해 ‘내가 이렇게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신감이 멋지다고 본다”

 

-향후 어떤 사람들의 열정을 보여줄 계획인가.

 

“‘빌딩에 화난 사람들’을 다룰 예정이다. 아티스트 여럿을 나오는데, 이들은 자신이 살던 곳에 한 건물이 들어온 데 너무 화가나 4년간 해당 건물에서 몰래 살았다. 20살 남짓 어린 우주인의 이야기도 기획 중이다. 이와 함께 우주에 열정적인 사람들의 이야기, 어떻게 우주인이 됐는지 등을 보여주려 한다.”

 

인천=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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