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내추럴 와인이 대세!’
2023년 대한민국에서 와인은 익숙한 주류다. 와인 붐이 일어난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식당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주, 맥주가 아닌 와인을 즐기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근사한 와인바를 찾는다든지, 원하는 와인을 구매해 집에서 가족과 즐기는 방식 역시 정착됐다.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한국은 20년간 와인 소비 규모가 6배가 늘었다. 바야흐로 와인의 대중화 시대인 것이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내추럴 와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머곰양조장의 정호정(42) 대표를 만나 관련 시장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한국에서 내추럴 와인을 외치다
이제 자연스럽게 내추럴 와인에도 관심이 쏠린다. 우리가 대체적으로 접하는 와인은 다양한 첨가물이 가득하다. 특히 대표적인 와인 첨가물인 아황산염은 알레르기 유발물질로도 알려져 있다. 이름은 ‘포도주’인데 포도만 담긴 게 아니었다. 반면 내추럴와인은 방부제 및 일체의 첨가물이 없다. 주재료 역시 농약을 주지 않은 유기농 포도만으로 완성된다. 그만큼 생산량도 적다. 어찌보면 대중화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내추럴 와인에 젊음을 바친 이가 있다. 바로 정호정 대표다.
최근 서울 중구 약수동에 위치한 머곰양조장에서 정 대표를 만났다. 그는 2021년 머곰이란 내추럴 와인 양조장을 설립했다. 머곰은 ‘한 모금 두 모금’ 할 때 모금의 순우리말이다. 내추럴 와인을 한국 스타일로 재해석하겠다는 철학이 담긴 네이밍이다. 2020년부터 테스트 기간을 거쳐 화이트에 이어 최근엔 레드 와인을 라인업에 내세웠다.
그렇다면 왜 많은 술 가운데 와인을 택했을까. 정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와인동호회에 가입하며 와인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해외에 가서 공부하면서 더욱 와인에 빠져들게 됐다”며 “그러면서 내추럴 와인을 접하게 됐고, 자연 발효에서 오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내추럴 와인의 정의는 뭘까. 업계에서는 일체의 첨가물을 더하고 빼는 것 없이 포도만을 고스란히 담아 만든 와인으로 대체적으로 통용된다. 다만 유기농 포도로 발효까지 했지만 부산물을 빼고 싶다면 필터링하기도 한다. 생산자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셈이다.
◆내추럴 와인, 머곰에 취해보자
정 대표가 만든 머곰은 어떤 브랜드일까. 정 대표는 “한 모금에 담아내는 가치있는 술이란 생각을 하며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생산하고 있는 와인은 내추럴 와인”이라며 “자연효모를 그대로 발효해서 만드는 술로, 첨가물을 더한 것도 뺀 것도 없다”고 말했다.
화이트 머곰은 청수라는 포도종을 가지고 만들며, 아쿠르트처럼 달큰하면서 풍부한 유산균이 느껴지는 향을 갖고 있지만 달진 않고 산도와 감칠맛이 느껴지는 드라이한 와인이다. 알코올 도수가 매해 재배되는 포도의 당도에 따라 10도에서 12도까지 차이가 나는 점이 흥미롭다.
정 대표는 “우리가 해외에서 몇 세기 동안 만들어온 술의 품질을 단시간내에 100% 따라잡을 순 없다”며 “우리 캐릭터가 ‘쿼카’인데, 왜 쿼카냐면 저희가 가지고 있는 스타일은 ‘귀엽고 재미있는 매력’이다. 진지하게 마시기보단 마시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쿼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물이란 애칭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양조장에 사람들이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으면 한다. 내추럴 와인 뿐만 아니고 마이너하거나 메이저한 문화에 대한 가치를 얘기하고 나누는 공간이고 브랜드였으면 좋겠다”며 “행사 있을 때만 오픈하지만 미리 연락해주시면 양조장 투어도 가능하다. 앞으로 와인에 대한 교류 및 교육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연간 총 생산량(화이트·레드)은 2000병가량이다. 유기농 농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생산량도 적다. 정 대표는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적으로 포도를 만들었는가’가 첫 번째 관건이다. 그런데 그러한 농가를 소개받는 게 제한적이고, 대부분에 농가들은 과수용 납품을 하기 때문에 포도재배농가와 계약하는 점 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정 대표는 오전부터 분주한 모습이었다. 한 농원에 포도를 착즙하고 남은 부산물을 직접 가져다주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원래는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했지만 해당 농원과 연락이 닿아 퇴비화에 성공했다. 정 대표는 “퇴비로 쓰기 위해서는 말리고 삭히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며 “그걸 다 직접 해주신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행복하다”고 웃었다. 이처럼 머곰에서 ‘포도’는 단 한 톨도 버릴 게 없는 존재다.

◆한국 내추럴 와인의 마중물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술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주세법을 비롯해 각종 까다로운 규정이 창의적인 술의 탄생을 방해한다. 예를 들면 막걸리는 ‘나무통에 저장하면 안 된다’는 식의 규정이다. 정 대표는 “주류를 창의적으로 만들기에는 제한사항이 많다”며 “각종 법령이 과거 일본법을 베껴온 것이 많아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개선할 방향을 찾아서 함께 합의해 차차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추럴 와인의 저변 확대에도 두 팔을 걷어붙였다. 정 대표는 최근 내추럴와인 페스티벌인 노벰버 내추럴 2023(November Natural)을 개최했다. 매년 11월 첫째 주에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내추럴와인 박람회이자 행사다. 국내외 유명 내추럴 와인 업체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와인 애호가 및 관계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일찌감치 매진됐다.
해당 행사에서 다시 만난 정 대표는 “대한민국은 내추럴 와인이 많이 성장한 나라”라며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을 제외하고는 일본, 미국, 한국이 가장 큰 시장이다. 한국에는 이미 좋은 와인들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시장 자체가 많이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량생산에 대한 욕심은 없다. 정 대표의 가치와는 다른 궤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오는 가치는 대단하다. 정 대표는 자연의 위대함을 한 모금, 한 모금 모아 머곰 한병에 담아낸다. 대량생산 즉,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면 일찌감치 그만뒀을 일이다. 대량생산에 대한 욕심은 없냐고 묻자 진지하게 말했다.
“포도를 수매하는 것도 쉽지 않아 양을 늘리는 부분은 현실적인 여러 어려움이 있다. 지금 세금과 월세를 내면 내 인건비는 안 나온다. 하지만 머곰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가치를 보고 일을 하고 있다. 저는 돈 벌 팔자는 아닐 수 있겠지만 나중에 대기업에 팔겠다는 생각 역시 하고 있지 않다. 정말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다. 저희가 만들어내는 것을 함께 영위하고 싶을 뿐이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