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고물가시대 명절

 설을 앞두고 전통시장과 대형마트를 찾은 이들은 가격표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최근 무섭게 치솟은 생필품 및 외식물가에 깜짝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명절을 앞두고도 지갑 열기가 만만치않다. 손에 든 물품 하나를 집고 놓았다를 반복하는 모습은 흔한 장면이다. 차례상을 준비하기 위해 찾은 과일 채소 코너에서는 ‘헉’ 소리가 저절로 난다.

 

 수치상으로도 확연하다. 지난 2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농축수산물 소비자물가지수는 122.71로 전년 보다 8% 치솟았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 2.8%의 2.8배 수준으로 특히 과일 물가 상승률(28.1%)은 전체 평균의 10배가 넘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사과는 56.8%, 배는 41%나 올랐다. 곡물과 채소도 각각 약 9% 상승했다. 대파는 상승률이 60.8%로 전체 농축수산물 품목 중 가장 높았다. 전통시장 기준 사과 3개(개당 약 400g) 평균가는 1만3231원으로 지난해(7647원)에 비해 2배 가까이 올랐다.

 

 다른 기관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를 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2일 기준 사과의 도매가격은 10㎏에 9만240원으로 1년 전에 비해 98.4% 치솟았다. 배 도매가격도 15㎏에 8만900원으로 66.7% 올랐다. 두 자릿수 인상이 아닌 두배 인상까지 이르렀다.

 

 그렇다면 설 차례상 비용은 얼마나 들까. 조사기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 기준 28만1500원, 대형마트 기준 38만580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설 차례상 비용 중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정부와 전국 지자체는 지난달 말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설 민생대책을 마련한다는 소식을 뿌렸다. 물가안정 특별대책이라고 명시하며 종합상황실과 물가합동지도 점검반을 운용하고 주요 성수품 관리에 나선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는 설 성수품 16개 품목을 평상시의 1.5배 수준으로 확대 공급하고 성수품 가격 할인을 위해 예산 84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르는 물가를 붙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경기 불황과 고금리로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진 서민들은 난감한 한숨만 내쉬고 있다. 문제는 설 명절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가시밭길이라는 점이다. 가처분소득(가계가 임의로 처분이 가능한 소득)이 감소하고 있어 생활고통은 배가 된다.

 

 올해 초 통계청이 결산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물가 중 대표 먹거리 지표인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6.8%, 외식 물가 상승률은 6.0%를 기록했다. 반면 1∼3분기 전체 가구의 가처분소득은 평균 393만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쉽게 말해 소득은 1% 늘고 먹거리 물가는 6%가 뛰었다. 월급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현실인 셈이다. 그나마 월급이라도 받으면 다행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임금 체불을 당한 근로자는 27만5000여명, 체불액은 1조7845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벌써 ‘물가 때문에 못 살겠다’는 이야기가 익숙해졌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 내수경기는 바닥까지 주저앉고 자영업자까지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중동전쟁 등 국제상황도 녹록지 않은데 안에서부터 무너지면 이를 막아낼 재간이 없다.

 

 반드시 물가부터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지만 최근 상황을 보고 있으면 불안한 마음이 크다. 4월 총선의 영향인지 정부는 부동산 완화 정책이나 GTX 추진 등 유동성을 푸는 정책안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기업 및 가계 연체율이 큰 폭으로 증가하며 위기경보를 보내고 있지만 그보단 표심잡기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대놓고 보내고 있다.

 

권기범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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