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평행선 달리는 정부와 이통사, 대화가 필요해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첫 시행될 당시 소비자들은 좌절했다. 때는 2014년, 삼성 ‘갤럭시 S5’와 애플 ‘아이폰6’가 최신 기종이었던 시절이다. 발품만 팔면 얼마든지 더 저렴하게 휴대전화를 구매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지금 같은 고가도 아니었다. 통신사 대리점을 찾아가면 알아서 계산기를 두들겨줬다. 통신사를 갈아타고 몇 개월간만 고가 요금제를 사용하거나 컬러링, 스팸차단 등 부가서비스를 추가하면 됐다.

 

 통신 이용자들간 정보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탄생한 단통법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모두가 공평하게 높은 통신비를 지불하게 됐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소비자들은 나름의 질서를 찾았다. 그 사이 스마트폰은 보편화됐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1대에 200만원 수준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이렇다 보니 트렌드에 민감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기기를 쉽게 교체하지 않는다. 제품이 워낙 잘 만들어져서 수 년을 써도 멀쩡하다. 새 모델이 출시되면 쿠팡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자급제 폰’을 예약 구매한다. 요금제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알뜰폰 요금제 시장도 팽창했다. 2~3년에 걸쳐 이동통신사에 묶여 있어야 하는 약정보다 더 합리적이다.

 

 그러던 올해 1월 정부가 단통법 폐지를 거론하고 나섰다. 제도 손질은 속도감 있게 추진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단통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을 의결했다. 후속 조치로 번호이동 시 기존 공시지원금 이외에 최대 50만원의 전환지원금을 주는 내용의 고시도 제정했다. 고시는 13일 의결, 14일 관보 게재를 거쳐 곧장 시행될 예정이었다. 정부는 출고가 115만5000원의 삼성 ‘갤럭시 S24 256GB’ 모델을 예로 들어 공시지원금 50만원, 전환지원금 50만원, 유통망의 추가지원금 15%를 합치면 사실상 공짜 수준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알뜰폰업계의 반발이 일었다. 시민 단체는 정부가 4월 총선 이전에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 부쳤다고 비난했다. 알뜰폰업계는 번호이동 활성화로 시장이 고사 위기에 놓였다고 호소했다. SKT, KT, LGU+ 등 이통 3사는 별다른 이견을 내지는 않았지만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고시 시행 당일인 14일까지 전환지원금 지급을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틀 늦은 16일부터 전환지원금 금액 규모가 공시됐다.

 

 지원 금액 정보를 접한 소비자도 뿔이 났다. 최대 50만원이라던 전환지원금은 3만원에서 13만원에 그쳤다. 정부가 언급한 갤럭시 S24 시리즈의 전환지원금을 공시한 곳도 KT뿐이었다. 금액도 금액인데 그 마저도 고가 요금제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모두를 만족시킬 정책은 없다지만 어느 한 집단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례도 흔치 않다. 10년 만에 야심차게 추진하는 정책인데 방통위의 의욕이 과도하게 앞섰다. 사후약방문 식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방통위는 알뜰폰업계의 호소가 나온 후에야 지원방안을 약속했다. 전환지원금 규모에 비판이 이어지자 이번에는 이통3사를 불러 금액을 확대해달라고 주문했다.

 

 올해는 한국에 이동통신업이 뿌리내린 지 40주년 되는 해다. 단일 사업자였던 이통사는 3개사로 늘었고 이제 제4통신사가 출범할 예정이다. 기존 3사는 통신을 넘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고 천명했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정부와 이통사가 대화에 나서지 않는 한 동상이몽은 계속될 것이다.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통신비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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